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 부실대응 책임과 관련하여 서울지방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관계 기관 55곳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경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핼러윈 기간 동안 시민안전사고를 우려하는 정보보고서 내용을 묵살하고, 사고 이후에는 해당 보고서 삭제를 회유하였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던 용산서 정보계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상황이 엄중해지고 있다.

수사를 맡고 있는 경찰 특수본의 발표 내용과 다수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참사 당일 현장에서 치안과 질서유지 업무를 맡은 경찰의 수뇌부는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개인 사정으로 지방에 내려가 있어 대통령실보다 늦게 현장 상황을 보고 받았고, 서울지방경찰청 상황관리관 류미진 총경은 상황실을 비우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임재 용산서장은 긴급상황이 발생한 사실을 인지하고도 대통령실 국정상황실과 용산서 112 상황실장의 연락조차 받지 않았고, 도보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꽉 막힌 도로에서 굳이 차량으로 이동하다 1시간 걸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하였다.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뒷짐을 진 채 어슬렁거리며 신속한 대처에 나서지 않는 등 시민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의 지휘체계가 사실상 먹통이었던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시민의 안전에 관한 또 다른 관리책임 기관인 용산구의 재난안전상황실은 작동하지 않았고, 사고 발생 이틀 전인 27일 자 용산구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사고 당일 많은 인파가 이태원 일대에 운집할 것으로 사전에 예상하고서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았으며, 재난안전관리 책임자인 용산구청장은 참사 직후 6차례 개최된 상황판단회의(서울소방재난본부)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재난문자를 발송해 달라는 정부와 서울시의 요청에도 78분간 처리하지 않는 등 사고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였다.

재난안전 예방과 관리 기관인 경찰과 관할 용산구청장이 직무를 방치하고 유기하는 정도에 이르렀다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3년 만에 마스크 없는 핼러윈 축제가 열려 이태원 일대에 많은 인파와 군중이 밀집될 수 있다는 사정이 충분히 예견된 상황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의 책임을 맡은 경찰 지휘라인과 용산구청이 하나같이 무책임하고 안일하게 처신하였다는 점은 단순히 비판을 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법률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재난 대응의 핵심은 현장 상황의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체계의 유지다. 정확한 현장 정보가 신속하게 전달되고 이에 대해 지휘부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필요 조치를 적시에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응하는 행정기관과 지자체가 기본조차 갖추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우리 사회의 안전을 맡길 것이며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권을 포함한 각계각층이 수많은 논의를 거듭하며 관련 제도를 보완하였으나, 이번에도 국가는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데 실패하였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번 참사는 한없이 부끄럽고, 어이없으며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정부는 이번 사고에 대한 신속하고 빈틈없는 수사를 통하여 참사 발생 원인을 한 점의 의혹없이 철저히 밝히고, 관할 지자체와 함께 유족과 피해자를 위한 배상에 적극 나섬으로써 국가의 기본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반성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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