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회, 아트랩범어 오픈갤러리서 '제4회 문화·예술제' 개최

변호사가 직접 찍은 사진 '눈길'… 유일한 서각 작품도 인기

6월 '법률사무소 방화테러 사건' 희생자 추모시 공간도 마련

"안타까운 마음 다시 떠올라… 희생자에게 위로의 시간되길"

△ 아트랩범어 오픈갤러리에서 제4회 대구지방변호사회 문화·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 아트랩범어 오픈갤러리에서 제4회 대구지방변호사회 문화·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대구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범어역(수성구) 내의 '아트랩범어 오픈갤러리'. 그림과 시(詩), 예술사진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시돼 오가는 이의 시선을 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시민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을 들여다봤다.  

제4회 대구지방변호사회 문화·예술제.

행사는 대구 시민들과 예술 감성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24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 간 변호사회 주도로 진행된다. 예술제 마지막 날(31일)에는 한영아트센터 안암홀에서 대구변회 소속 '밸런스 합창단'의 공연도 예정돼 있다. 

전시는 박재현(사시 35회) 변호사의 '팔공산' 사진(위 사진)으로 시작된다. 행사장 들머리에는 흑백 사진으로 촬영된 팔공산 절경들이 놓여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힐끔 힐끔 곁눈질로 작품을 훑어 보며 지나갔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 보는 이들도 꽤 많았다.

△ 윤영훈 변호사가 출품한 시 3편
△ 윤영훈 변호사가 출품한 시 3편

대구변회와 '달빛교류' 협약을 맺은 광주지방변호사회(회장 진용태)에서도 예술제 전시를 위한 찬조 작품을 냈다. 양 회는 영·호남 교류증진과 법률문화 향상을 위해 2017년 11월 달빛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상호 방문행사 등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광주회에서는 윤영훈(군법 4회)·전도영(사시 8회)·박철(변시 4회) 변호사가 시와 스케치, 사진 작품을 출품했다.

제일 인기 있는 작품은 '가장 좋은날'과 '불이선란도'라는 제목의 서각(위 사진) 예술품이다. 권기룡 대구변회 사무국 부장은 '어떤 날이든 너와 함께 하는 날이 나에게 가장 좋은 날이야'라는 문구가 적힌 서각 작품을 냈다. 작품은 투박하면서도 섬세함이 녹아있는 고유의 미(美)를 자아내 눈길을 끌었다. 

한 시민은 "서각 예술품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한 번 만져보면서 좋은 기운을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 한 시민이 황영목 변호사의 사진 작품을 사진으로 찍고 있다.
△ 한 시민이 황영목 변호사의 사진 작품을 사진으로 찍고 있다.

한 중년 여성은 유독 한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휴대 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황영목(사시 18회) 변호사의 '큰 고니'와 '재두루미'라는 사진 작품이었다. 그는 "지나가는 길에 변호사들이 전시를 했다고 하길래 특이해서 보게 됐는데, 전문 예술인이 아님에도 작품이 훌륭해 사진을 찍으려 한다"고 말했다.

다른 작품 앞에서는 두 여성이 담소를 나눴다. 이들은 오늘 이 곳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옆에 나란히 서서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다 사진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길게 늘어선 일반 갤러리를 지나자 이번에는 다소 엄숙한 공간이 나왔다. 지난 여름 법률사무소 방화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헌정시가 마련된 곳이다. 

2022년 6월 9일, 대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소송 상대방인 50대 남성이 인화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여 6명의 무고한 생명이 안타깝게 세상 떠났다. 그야말로 참사였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대구지방변호사회, 대구문인협회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7월 1일부터 8월 19일까지 '희생자 추모시 공모전'을 진행했다. 변호사와 법률사무소 사무직원, 기자, 일반인 등이 총 36개의 작품을 출품했다.

대상을 받은 이은빈(변시 9회) 변호사의 '그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우수상을 수상한 김진 시인의 '어찌 놓을 수 있을까' 등 수상작 뿐만 아니라 '여섯 개의 화원', '어느 유월의 비극', '어둠은 깊고 빛은 머리서 오니' 등 공모전에 출품한 추모시가 이곳에 전시됐다.

△ 추모시 공간에서 한 중년 남성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추모시 작품 사진을 찍고 있다.
△ 추모시 공간에서 한 중년 남성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추모시 작품 사진을 찍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던 시민들도 추모시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표정이 어둡게 바뀌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추모시를 보는 시민들의 모습은 올 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방화테러 사건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한 시민에게 다가가 추모시를 감상한 소감을 물었다. 

"몇 달 전에 소송에서 패한 당사자가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서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났어요. 이렇게 추모시를 보니까 그 때의 안타까운 마음이 다시 떠오릅니다. 다시 한번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60대 남성)."

이번 예술제를 주최한 이석화(사시 39회) 대구변호사회장은 "지난 6월 변호사제도와 법치주의를 부정 당하는 무지막지한 일을 겪었지만, 법치주의는 선진 사회의 한 축이고 그 소임을 수행하는 변호사로서 깊은 좌절감으로 주저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올해 문화·예술제는 마음 속 생채기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하는 치유의 행사이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희망의 싹을 틔우는 심기일전의 장이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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