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현 변호사
배상현 변호사

1. 대상판결 요지

채권자는 채무자에 대하여 2684만 원의 채권이 있었고, 채무자로부터 미수금 지급 명목으로 600만 원을 송금받기로 하였다. 그러나 채무자는 착오로 6000만 원을 송금하였고, 채권자는 6000만 원에서 미수금 채권 2684만 원 전부를 공제한 후 나머지 3316만 원만 채무자에게 반환하였다. 검사는 채권자가 초과로 송금받은 2084만 원(채무자 송금액 6000만 원 - 원래 변제하기로 한 600만 원 - 채권자가 반환한 3316만 원)을 횡령하였다고 보아 채권자를 횡령죄로 기소하였다.

그런데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2021. 5. 26. 선고 2020고단2294 판결(이하 ‘대상판결’)은 “변제는 민법상 법률행위가 아닌 준법률행위이고, 준법률행위는 행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효력이 발생하므로, 지급인이 본인의 의도보다 초과로 송금한 2084만 원 부분에 관하여 변제의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변제효력이 발생한다”고 보았고 “피고인은 채권자로서 이행된 급부를 보유할 수 있는 급부보유력을 가지므로 지급받은 돈을 지급인을 위하여 보관하거나 이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라고 판단하며 채권자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2. 변제가 준법률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변제를 준법률행위로 보았지만, 변제의 성질에 관하여 학설 대립이 있다. 학설은 크게 법률행위설과 비법률행위설로 나눌 수 있다. 법률행위설은 변제에는 변제의사가 필요하다는 견해이고, 반면 비법률행위설은 변제의사가 필요없다는 견해이다. 민법 주석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비법률행위설이 통설인데, 비법률행위는 다시 준법률행위설과 사실행위설, 사실적 급부실현설, 목적적 급부실현설로 나뉜다고 한다. 그 중 준법률행위설은 ‘변제란 행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의 규정에 따라 일정한 법률효과가 발생하는 법률사실에 해당한다는 견해’이고, 대상판결은 위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변제의 성질(변제의사가 필요한지 여부)에 관하여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 1956. 11. 15. 선고 4289민상404 판결은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금원을 융통받은 경우에 채무자가 기존채무의 변제의 의사로써 교부한 것이 아닌 이상 이를 기존 채무의 변제로 볼 수 없다”라고, 대법원 1997. 5. 28. 선고 96다46088 판결은 “기왕의 금전채무가 있음에도 채무변제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처를 지정하여 금전을 지급한 경우, 기존 채무에 대한 변제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각 판시한 바 있다. 위 대법원 판례들을 근거로, 대법원은 변제의 효과가 발생하기 위해선 변제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3. 변제에 변제의사가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만약 변제의 효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변제의사가 필요하다고 본다면, 본 사안에서 채무자는 600만 원에 대해서만 변제의사가 있었으므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6000만 원을 이체하였다고 하더라도 채권자의 미수금 채권 2684만 원 중 600만 원에 대해서만 변제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6000만 원 중 600만 원을 제외한 5400만 원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하고, 본 사안과 같이 5400만 원 중 3316만 원만 반환하였다면 나머지 2084만 원에 관하여는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한다.

그러나 채권자는 여전히 채무자에 대해 미수금 채권 2084만 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 미수금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채무자의 부당이득반환채권 2084만 원과 상계할 수 있다. 상계는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로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상계는 일방적 의사표시만으로 행사할 수 있고, 상계적상 시에 소급하여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채권자가 상계의 의사표시를 한다면 채무자의 부당이득반환채권 2084만 원 뿐만 아니라 위 2084만 원에 관한 신의칙상 보관관계도 상계적상 시에 소급하여 소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채권자는 2084만 원에 대하여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고, 횡령의 고의나 불법영득의사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결국 변제를 준법률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상계권을 행사한다면 채권자에게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결론에서 있어서 대상판결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배상현 변호사

OCI주식회사 법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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