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2일 제23차 사법행정자문회의 개최… '디스커버리' 연구결과 발표

진실의무·증언녹취·문서제출명령 '적극 검토'… 소제기 전 증거조사는 '신중'

△ 대법원이 12일 제23차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열고 있다(사진=대법원).
△ 대법원이 12일 제23차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열고 있다(사진=대법원).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관한 윤곽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대법원은 12일 제23차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열고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등 도입 검토' 안건을 논의하고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의 제안으로 지난해 11월부터 법관 9명과 교수 1명, 변호사 1명으로 구성된 디스커버리 연구반(팀장 박진수 부장판사)를 발족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다.

지난 8월 전국 법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4%가 "현행 민사소송 제도 아래에서는 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에 공감했으며, 85.9%는 "재판 당사자가 정보·증거를 투명하게 공유해 분쟁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 것을 나타났다.   

연구반은 진실의무 및 증언녹취제도(deposition)를 도입하고 문서제출명령 제도 개선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진실의무는 자신의 인식에 반하는 진술과 소송자료 제출을 금지하는 소극적 의무를 뜻한다. 연구반은 민사소송법 제1조 제2항을 개정해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해야 하고,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증언녹취제도는 분쟁 초기에 주요 증인에 대한 신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사건의 쟁점을 분명히 할 수 있으며, 분쟁의 조기종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소송 당사자가 변론 전에 법원의 관여 없이 상대방 또는 제3자를 신문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증언녹취 제도가 폭넓게 활용된다. 

연구반은 이 같은 제도가 증거의 구조적 편재(偏在)현상을 완화하고 변론절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이와 관련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특허침해소송 영역에서 증언녹취 제도를 도입하는 특허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특허권·전용실시권 침해소송에서 자료의 진위 확인이 필요한 경우 법원 외 장소에서 법원 관계자의 주도 하에 당사자 간 증인신문을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연구반은 개정안 내용을 검토하면서 신문 대상에 '당사자'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당사자가 신문 대상인 경우에는 거짓진술에 민사소송법 제369조 및 제370조의 제재 규정을 준용하는 등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언녹취 가능 시점을 '제1회 변론기일 전'으로 한정하고, 증언녹취 시 법원이 당사자에게 변호사 선임을 명할 수 있도록 '변호사 선임명령 제도'를 도입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인 민사소송절차에서 증언녹취가 광범하게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특허침해소송 영역에 우선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문서제출명령 제도를 개편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연구반은 상대방으로부터 제출받을 필요가 있는 증거를 서증에 한정하지 않고 대상 범위를 '문서'에서 '문서 등 자료'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자료제출 신청에 관한 재판 절차에 비밀유지명령 제도를 도입해 제출의무에 대한 판단이 면밀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으며, 명령 위반시 제재 수단을 다양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냈다. 

다만 전자적 형태로 저장된 정보 등 '합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렵거나 추출하는 데 과도한 비용이 드는 전자적으로 생성된 자료'에 대해서는 제출의무를 면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반면 가장 화제가 됐던 '소제기 전 증거조사 제도'에 대해서는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는 소극적인 의견을 냈다. 연구반은 소 제기 전 증거조사에 대해 당사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신속한 재판 진행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는 △당사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는 점 △신속한 재판 진행을 저해하고 직접주의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는 점 △각급 법원 재판부가 개별 사안에서 합리적으로 증거조사 절차를 운용하는 것을 힘들게 할 수 있는 점 등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개별 법령에서 규정한 증거수집절차를 확대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연구반은 "소제기 전 증거조사 제도 도입이 증거의 구조적 편재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28조,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15조 등과 같이 증거 편재가 특히 문제되는 일정한 유형의 소송에서 증거수집절차를 마련하고 있는 특별법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취지의 제도를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대안도 있다"고 강조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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