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나이에 펴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청춘의 넋을 통곡하는 심정으로 위로합니다. 부디 고통 없이 편히 영면하소서."

"이 넓고 사람 많은 곳에서, 바로 앞에는 고객 안전실이 있었는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어디서 살아가야 하나요."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는 지난 14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분향소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시민들의 포스트잇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포스트잇에 적힌 메시지 하나하나에는 시민들의 분노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한 중년 남성도 분향소를 발견하자 잠시 멈춰섰다. 허리를 숙이고 분향소를 향해 짧게 묵념을 마친 그는 포스트잇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기자가 다가가 "혹시 피해자와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자 그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저은 뒤 "모르는 분이지만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묵념이라도 올렸다"고 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온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직장 동료였던 가해자에게 끈질긴 스토킹에 2년간 시달리던 피해자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경찰에 고소했고, 응당한 처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피해자가 살해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큰 안타까움을 샀다. 

피해자 유족 대리를 맡은 민고은 변호사는 "피해자는 누구보다 강하고 용감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탄원서에 "누구보다도 이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가, 합의 없이 오늘까지 버틴 것은 판사님께서 엄중한 처벌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자신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가해자는 2년간 무려 350여차례 집요하게 '만나달라'고 요구했다. 그런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갈 가능성은 전혀 고려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발효되자, 법조계를 중심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 등에만 주력해, 피해자 보호 측면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후속 입법을 통해 피해자 보호 조항을 넣겠다는 국회는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때문에 스토킹 범죄 피해자들을 가해자를 고소한 뒤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결국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재발 방지를 위한 검경수사체가 구성되고, 스토킹 관련 범죄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변협과 대법원도 피해자 보호명령제도 및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 등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스토킹 범죄는 절대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피해자 보호'에 보다 무게 중심이 실린 실효적 조치들이 마련돼 또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되기를 기원한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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