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등, 22일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 관련 토론회 개최

"공항은 사람 사는 곳 아냐... 위법한 구금 등 처우 개선해야"

재판 진행기간 축소 명문화, 법률조력정보 안내 등 해결책도

△ 이상민 변호사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 이상민 변호사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영화 '터미널(2004)'에서 빅터 나보스키는 뉴욕을 찾았다가 고국에서 발발한 쿠데타로 인해 여권 효력이 정지돼 공항에 발이 묶이게 된다. 항공사에서 준 식권을 잃어버린 빅터는 양념소스 등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이후 공항 카트를 반납해서 나오는 동전으로 햄버거를 사먹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곧 금지당했다. 씻는 건 공항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군부의 위협 때문에 올해 우리나라에 온 A씨는 5월 24일부터 약 한 달간 공항에 머물렀다. 6월 1일까지는 난민신청자 대기실에서 심사를 받았고, 2일 심사에서 거절 당한 후부터는 환승구역에서 머물렀다. 항공사 직원이나 출입국 공무원들의 도움은 없었다. 마음놓고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수시로 끼니를 걸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물도 사서 마셔야 했다. 샤워는 변호사들을 만난 후에야 간신히 출입국 공무원들에게 요청해서 할 수 있었다. A씨는 당시 일을 떠올리며 "1년이 아니라 며칠이라도 그 안에서는 버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공항에서 몇 개월이고 머무를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

외부와의 출입이 통제되는 한정된 공간에서 입국 불허 외국인 등을 장기간 머무르도록 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2014년 나왔지만, 여전히 '장기 대기' 외국인은 존재한다. 이에 부득이하게 장기 대기를 해야하는 외국인들을 고려해 별도의 '출국대기소' 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은평구갑), 유엔난민기구, 난민인권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 양희철 변호사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양희철 변호사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양희철(사시 52회) 법무법인 명륜 변호사가 '출국대기실 국가운영 법령에 대한 검토'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

양 변호사는 "과거 송환대기실은 입국불허 행정처분 결과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외국인이 머무는 곳인데도 외국인들이 그 장소에 대기해야 할 법적 근거가 불분명했다"며 "이번 개정으로 기존 장소 제공에서 나아가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는 운영관리를 규정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개선해나가야 할 점들이 많다"고 비판했다.

이어 "출국대기실 자체도 장기간 체류를 전제로 만들어지지 않아 규모가 작고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며 "명칭이 송환대기실에서 출국대기실로 변경됐다고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인이 출국대기실에서 장기간 대기하더라도 숙식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며 "(출국대기실 등에서의 대기)기간이 길어질수록 입국자들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출국대기실 관련 규정은 개정됐지만 출국대기소 설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출입국항에 대기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기존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유럽인권재판소는 △불이 항상 밝혀진 복잡하고 시끄러운 환경 △샤워와 조리시설에 대한 접근 제한 △경찰 감시 등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항 환승구역에서의 난민신청자 장기 대기는 신체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여러 차례 판단했다.

이일 변호사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일 변호사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출국대기실 국가운영제도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일(사시 48회) 난민네트워크 의장도 "공항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고 난민인정심사불회부결정을 받은 외국인들의 처우는 참혹하다"며 "위법한 구금이 주는 사실상 압박으로 인해 한국 영토 안에서 외국인들의 권리 행사는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환대기실을 출국대기실로 개정 운용하게 된 것은 진일보한 사안이지만 '장기 대기'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다"며 "장기 대기가 불가피한 외국인에 대한 처우를 본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항 바깥에 '출국대기소'를 설치해 그곳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궁극적으로 사법 구제절차 축소 등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설이 아무리 잘 돼있더라도 출국대기실이든 출국대기소든 장기간 갇혀있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며 "근원적으로는 사법적 구제절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민 관련 사건을 전담할 수 있는 재판부가 한국에 없으므로 '통상적 재판 진행기간'에 대한 불이익은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외국인들이 지게 된다"며 "분야별로 신속하게 사건을 심리할 수 있는 법원을 설치하거나, 행정소송법에 2주 안에 첫 기일을 지정하는 등 특례를 규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탁건(변시 2회) 유엔난민기구 법무담당관은 "개정 출입국관리법은 출국대기실 이외 장소에서 대기를 허용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그 양태 및 조건이 불명확하고 기존 환승구역에서의 장기간 대기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상존한다"며 "난민신청자에게 초기 단계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난민신청절차 전반에 대한 정보, 유엔난민기구 연락처를 포함한 법률조력에 대한 정보를 게시하고 연락이 항시 가능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혜경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은 "난민신청자에 대한 처우와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타협점으로 출국대기소 설치가 논의되는 점이 우려된다"며 "이번 계기로 장기간 대기하게 되는 외국인에 대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구금' 범위를 벗어난 다양한 대안이 검토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한편 반재열 전 법무부 출입국기획과장은 "출국대기소 내부를 환자, 노약자 등 입소자 유형에 맞춰 개방형으로 운영하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외국인지원센터 입소자들은 이미 '입국한' 난민 신청자이지만, 출국대기실 입실자들은 입국불허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출국대기소 외부는 폐쇄형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 출입국관리법을 입법한 박 의원은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출국대기소를 국가가 운영토록 했지만 이는 단기 출국대기자를 위한 시설이므로 장기 대기자들을 위한 인도적 처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며 "더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이 협회장은 "개정 출입국관리법은 노약자나 영유아 동반자 등 취약자를 포함해 법적 권리구제 절차 진행 등으로 장기간 대기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과 송황대상외국인이 출국대기실까지 이동하는 과정에 대한 책임 주체 등에 관한 사항이 명확하지 않다"며 "개정 법령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입법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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