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영 서울대 로스쿨 교수
최계영 서울대 로스쿨 교수

Ⅰ. 들어가는 글

2021년에도 행정법의 여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들이 선고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송요건 단계에서는 처분 개념을 넓게 해석하여 항고소송을 통한 사법심사의 범위를 확장하면서도, 본안판단 단계에서는 특히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행정 재량을 존중하여 사법심사 강도를 낮추는 최근의 큰 흐름이 작년에도 계속되었다(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0두51280 판결; 2021. 6. 30. 선고 2021두35681 판결). 한편 행정기본법이 작년에 제정되어 9월부터 시행되었다(일부 조항은 2023년 시행). 앞으로 행정실무와 판례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Ⅱ. 행정청의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경우 이를 판단하는 방법(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1) 행정청의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추상적·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구체적인 경우에 관련 법령의 내용과 취지, 그 행위의 주체·내용·형식·절차,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 사이의 실질적 견련성, 법치행정의 원리와 그 행위에 관련된 행정청이나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행정청의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불복방법 선택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처분 해당 여부는 상대방의 인식·예측가능성 고려해 판단
이의신청 기각 통지일이 쟁송제기기간 기산점으로 법 개정 

(2) 이 사건에서는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이 처분에 해당하는지 쟁점이 되었다. 피고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차로 이주대책 대상자 부적격결정(‘1차 결정’)을 하였고 이의신청이 제기되자 2차로 불수용결정(‘2차 결정’)을 하였다. 과거에 대법원은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하여 처분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였고(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원심은 이를 원용하여 이 사건에서의 2차 결정도 처분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의 특수한 사실관계에 주목하여 위 선례와 달리 처분성이 인정된다고 하였다. 선례는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하여 행정쟁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불복방법 안내를 하지 않았던 사안에 관한 판단인 반면, 이 사건에서는 피고 공사가 원고에게 2차 결정을 통보하면서 ‘2차 결정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경우 2차 결정 통보일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이나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의 불복방법 안내를 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위 선례를 포함한 일련의 판결에서, 이의신청은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단서의 ‘행정심판’이 아니어서 이의신청 기각결정 통지일을 제소기간의 기산점으로 삼을 수 없고, 이의신청 기각결정이 원처분과 별개의 처분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에 따르면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을 기다려 보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을 때 비로소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려 한 자는 쟁송제기기간이 지나 불복의 기회를 잃게 될 수 있다. 이러한 대법원의 접근방식은, 처분상대방은 법령이나 행정청의 정책에 따라 제공된 이의신청 기회를 활용한 것이라는 점, 이의신청을 통해 불복의 의사를 조기에 표시한 이상 쟁송을 허용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깨뜨린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수긍하기 어려웠다. 대상판결은 기존의 일반론을 고수하면서도 불복방법 안내가 있었다는 사안의 특수한 사실관계에 주목하여 불합리를 해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016. 7. 27. 선고 2015두45953 판결, 2016. 7. 14. 선고 2015두58645 판결 등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일반론을 고수하면서 개별 사안의 특수성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 이 문제는 곧 입법적으로 해결될 예정이다. 2023년에 시행될 행정기본법 제36조 제4항에서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받은 후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려는 자는 그 결과를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의신청 기각결정 통지일이 쟁송제기기간의 기산점이 되므로, 상대방은 기간 도과의 우려 없이 이의신청의 결과를 기다릴 수 있다.

Ⅲ. 검찰총장의 검사에 대한 경고조치의 처분성, 법적 성격 및 위법성 판단기준(대법원 2021. 2. 10. 선고 2020두47564 판결)

(1) 검찰총장이 사무검사 및 사건평정을 기초로 대검찰청 자체감사규정 제23조 제3항, 검찰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 처리지침 제4조 제2항 제2호 등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하여 하는 ‘경고조치’는 일정한 서식에 따라 검사에게 개별 통지를 하고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며, 검사가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으면 1년 이상 감찰관리 대상자로 선정되어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고, 경고를 받은 사실이 인사자료로 활용되어 복무평정, 직무성과금 지급, 승진·전보인사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향후 다른 징계사유로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경우에 징계양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검사의 권리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검찰총장의 경고처분은 검사징계법에 따른 징계처분이 아니라 검찰청법 제7조 제1항, 제12조 제2항에 근거하여 검사에 대한 직무감독권을 행사하는 작용에 해당하므로, 검사의 직무상 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하지 않아 검사징계법에 따른 ‘징계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징계처분보다 낮은 수준의 감독조치로서 ‘경고처분’을 할 수 있고, 법원은 그것이 직무감독권자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징계사유 아니어도 검찰총장은 검사에 경고처분 할수 있고, 
 법원은 직무감독권자 재량권 일탈·남용이 아닌 이상 존중을

(2) 이 사건에서 피고 검찰총장은 검사인 원고에 대해 19건의 수사사무를 부적정하게 처리(부당 혐의없음, 구약식, 기소유예 등)하였다는 지적내용으로 “상기 지적사항은 검사로서 직무를 태만히 한 과오가 인정되어 엄중 경고함”이라는 내용의 서면에 의한 경고를 하였다. 이러한 서면경고는 검사징계법에 근거한 징계처분과 별개의 것으로서 대검찰청 내부규정(훈령, 예규)에 근거한다. 원심법원과 대법원 모두 검찰총장의 검사에 대한 경고조치가 항고소송의 대상인 처분이라는 점에는 견해를 같이 하였지만, 이 사건에서의 경고처분이 위법한지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였다. 원심은 검사징계법상의 징계사유가 있어야 경고처분도 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위 경고처분이 위법하다고 하는 반면, 대법원은 경고처분은 징계처분보다 낮은 수준의 직무감독권의 행사이므로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경고처분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직무감독권자의 재량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여 경고처분에 대한 법원의 심사강도를 대폭 낮추었다. 대법원이 제시한 이러한 법리에 따라 파기환송심은 이 사건 경고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경고처분은 「대검찰청 자체감사규정」 제23조 제3항과 「검찰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 처리지침」 제4조를 근거로 한다. 앞의 조항은 “징계사유에 해당되더라도” 특별히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경고·주의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경고처분은 징계사유가 있을 때 이를 감경하는 처분으로 읽히는 반면, 뒤의 조항은 경고를 “비위의 정도가 주의보다 중한 비위관련자에게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엄중히 꾸짖는 내용의 경고장을 송부하는 경우”라고만 규정하여 그 사유를 징계사유에 한정하지 않는 것으로 읽을 여지가 있다. 앞의 조항에 비중을 둔 원심과 달리, 대법원은 뒤의 조항에(이에 더하여 직무감독권의 행사라는 성격에) 보다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사는 수사와 기소에 있어 일정한 재량이 있고, 대상판결에도 나타나듯이 이 사건에서의 검사 사건처리는 검찰총장이 수립한 “내부기준에 위배되거나 증거관계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가장 적합한 조치가 아닐” 수 있을지언정 “검사에게 주어진 재량권 범위 내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위법하지 않은 것”인데, 이를 이유로 “감찰관리 대상자로 선정되어 특별관리를 받을 수 있고” “복무평정, 직무성과금 지급, 승진·전보인사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경고처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검사의 직무상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경고처분에 대한 사법심사 강도를 대폭 낮춘 대상판결은 우려스럽다.

Ⅳ. 여러 위반행위들 중 일부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하고 나머지에 대하여 추후 별도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지(대법원 2021. 2. 4. 선고 2020두48390 판결)

(1) 관할 행정청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의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하였다면 전부에 대하여 일괄하여 5,000만 원의 최고한도 내에서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인지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에 대해서만 우선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차후에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하여 그 전부에 대하여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이 가능하였음에도 임의로 몇 가지로 구분하여 각각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게 되면,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의 최고한도액을 정한 법령의 적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할 행정청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가 범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만 인지하여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였는데 그 후 과징금 부과처분 시점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인지하여 이에 대하여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의 대상이 된 위반행위와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대상이 된 위반행위에 대하여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여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처분양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행정청이 전체 위반행위에 대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경우에 산정되었을 정당한 과징금액에서 이미 부과된 과징금액을 뺀 나머지 금액을 한도로 하여서만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언제 인지하였느냐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처분상대방에게 부과되는 과징금의 총액이 달라지는 것은 그 자체로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복수의 위반행위 중 일부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하고 
 나머지는 추후 부과한다면, 형평 고려해 처분양정을 해야

(2) 대상판결에서는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해 변형과징금(사업이나 영업의 정지처분에 갈음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때 과징금 부과처분의 방법과 산정기준에 대한 법리를 새로이 전개하였다. 원칙적으로 위반행위에 대해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여야 하고, 예외적으로 처분 당시에 일부 위반행위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만 별도로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위반행위를 인지하지 못하여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이 허용되는 예외적 상황이라도, 과징금액의 산정은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 사건에서 행정청은 처분상대방의 두 개의 위반행위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그 중 하나의 위반행위에 대해서만 먼저 최고한도액인 5,000만 원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고 나중에 다른 위반행위에 대하여 별도로 다시 최고한도액인 5,000만 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였다. 원심에서는 두 개의 위반행위를 묶어 하나의 처분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으나, 대법원은 새로이 전개한 위 법리에 따라 두 개의 위반행위를 묶어 하나의 처분을 하여야 하고 별도의 처분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근거 법령에 따르면 여러 개의 위반행위를 하였더라도 최고한도액은 행위별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1회에 부과할 수 있는 상한으로 적용되는데, 행정청이 묶어서 처분을 하는지 쪼개서 처분을 하는지에 따라 부과되는 총액이 달라지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과징금과 같은 제재적 행정처분을 정한 개별 법령에도 형법의 죄수론과 같은 성격의 조항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이 불완전한 경우가 많다. 대상판결은 그러한 실정법의 미비점을 일반법리로 보완하여 형평성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후적 경합범에 관한 형법 제39조 제1항을 참조한 것인데(이용우, 대법원판례해설 제127호, 468면), 입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이를 보완하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Ⅴ. 절차적 권리 침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국가배상책임(대법원 2021. 7. 29. 선고 2015다221668 판결)

(1)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익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업부지 인근 주민들은 의견제출을 통한 행정절차 참여 등 법령에서 정하는 절차적 권리를 행사하여 환경권이나 재산권 등 사적 이익을 보호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법령에서 주민들의 행정절차 참여에 관하여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민들에게 자신의 의사와 이익을 반영할 기회를 보장하고 행정의 공정성,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며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행정절차에 참여할 권리 그 자체가 사적 권리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행정절차는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기보다는 행정의 공정성과 적정성을 보장하는 공법적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크므로, 관련 행정처분의 성립이나 무효·취소 여부 등을 따지지 않은 채 주민들이 일시적으로 행정절차에 참여할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의무를 부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행정절차참여 침해 사정만으로는 국가배상책임 성립 안해
다만 공무원의 서류위조 등 예외 있었다면 배상책임 성립

이와 같은 행정절차상 권리의 성격이나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제출 등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후 이를 시정하여 절차를 다시 진행한 경우, 종국적으로 행정처분 단계까지 이르지 않거나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철회한 경우, 행정소송을 통하여 처분이 취소되거나 처분의 무효를 확인하는 판결이 확정된 경우 등에는 주민들이 절차적 권리의 행사를 통하여 환경권이나 재산권 등 사적 이익을 보호하려던 목적이 실질적으로 달성된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절차적 권리 침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은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조치로도 주민들의 절차적 권리 침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그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때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주장·증명책임은 이를 청구하는 주민들에게 있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주민들에게 행정절차 참여권을 보장하는 취지, 행정절차 참여권이 침해된 경위와 정도, 해당 행정절차 대상사업의 시행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2) 이 사건의 쟁점은 지방자치단체인 피고의 담당공무원이 폐기물 매립장 설치와 관련하여 관련 법령에서 정한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법행위를 했다는 이유 등으로 피고가 국가배상법 제2조에 따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는지 여부이다. 관련 법령에서는 폐기물 매립장 설치과정에서 입지선정위원회와 주민지원협의체의 구성, 폐기물처리시설 주변영향지역 결정·고시 등 일련의 행정절차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여 실질적인 주민참여를 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고의 담당공무원은 입지선정위원회의 설치와 그 위원회를 통한 입지선정과정을 배제한 채 마치 해당 절차가 이행된 것처럼 관련 서류를 위조하였다. 이에 대해 매립장 인근 주민들이 절차적 권리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구한 사건이다.

대상판결은 행정절차상 권리 침해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을 처음으로 밝힌 판례다. 그러한 배상책임은 제한적으로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행정절차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행정결정의 공정성과 적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 주요한 논거이다. 그러므로 처분이 성립되지 않거나 취소·철회되거나 무효로 확인되었다면, 행정절차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배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신적 고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지만, 그러한 특별한 사정의 주장·증명책임은 주민들에게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일반론을 전제로 하되 이 사건은 예외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처분의 무효확인판결이 확정되었지만, 피고 담당공무원의 행위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는 점, 매립장이 설치·사용된 기간 동안 피고가 매립장을 부실하게 운영한 점을 들어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담당공무원이 행정절차를 회피하기 위해 서류를 위조하였다는 이례적인 사정으로 인해 이 사건은 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대상판결에서 정립한 일반법리에 따르면 장래에 다른 사건에서 절차적 권리 침해로 인해 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이러한 대상판결의 입장은 행정절차의 수단적 성격에 초점을 맞추어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소송에서 반드시 처분을 취소할 것은 아니라는 최근의 일련의 판례(대법원 2018. 3. 13. 선고 2016두33339 판결; 2021. 1. 28. 선고 2019두55392 판결)와 궤를 같이 한다. 행정절차의 수단적 성격을 강조하는 이러한 흐름이 행정으로 하여금 행정절차를 준수하고 주민의 참여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계영 서울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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