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재판지연 관련 회원 설문조사… 구체적 피해 사례 등 접수

재판부 바뀌면 변론도 '처음부터'… 종결 후 변론재개 반복하기도

"어려운 사건은 기일 안 잡혀… 법관 늘려 합리적 사건배당 해야"

변호사 중 89%는 소송 중 재판지연을 경험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사법불신 현상이 더 심화되는 모양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재판 지연과 관련한 회원 불편 사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응답 변호사 666명 중 89%(592명)가 "최근 5년간 재판 지연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

소장 제출 후 첫 변론기일 지정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는 변호사 59%가 6개월 이내라고 응답해 가장 많았고 1년 이내(24%), 3개월 이내(16%) 등이 뒤를 이었다.

소장 제출 후부터 1심 선고기일까지의 소요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1년 6개월 이내가 54%(318명)로 과반을 차지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2년 이내 26%(151명), 1년 이내 14%(85명), 2년 이상 6%(38명)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한 변호사는 "재판이 계속 지연되다보니 소송당사자가 법적 구제에 대한 기대 자체를 접어버렸다"며 "1심 재판만 3~4년씩 진행되면서 당사자 의뢰인의 사법 불신이 깊어지고 이에 따른 심리적 피해도 극심하다"고 강조했다.


● 지연 이자가 원금보다 커져... 변론재개 '무한반복' 사례도

설문을 통해 재판 지연에 따른 구체적인 피해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기일 지정이 늦어져 재판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급격히 늘어났으며, 재판부 인사로 새 재판부가 오면 처음부터 다시 변론재개를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변호사는 "2021년 소장을 접수하고 3개월 뒤와 7개월 뒤로 기일지정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모두 기각됐다"며 "결국 첫 변론기일은 (소장 접수한 지 1년이 넘은 시점인) 2022년 9월로 지정됐다"고 응답했다. 

다른 변호사는 "(소장 제출 후) 2년이 지나도록 첫 기일이 잡히지 않은 사건을 배당 받아 재판부에 직접 연락해 간신히 첫 번째 기일을 잡은 적이 있다"며 "재판기일 자체도 늦게 지정되지만, 지정 기일 내 재판 시간도 계속 연기되기 일쑤"라고 말했다. 

또 "직전 재판부가 1년 넘게 심리하면서 변론종결을 예정한 사건에 대해 바뀐 재판부가 처음부터 심리를 시작했다"고 말한 변호사도 있었다. 

관련해서 "사실관계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 등에 대해 충분히 직접 심리를 한 재판부가 종결 및 선고하지 못하면 다음 재판부에 사건이 넘어가게 된다"며 "새로운 재판부도 그간의 법적·사실적 공방을 이해하는 데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므로 부담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답변도 있었다. 

재판지연은 당사자들의 금전적 피해로 이어진다. 손해배상이나 물품대금 청구가 연기되는 기간 만큼, 당사자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지연손해금이 원금만큼 커지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변호사는 "대여금 청구사건의 1심 판결 선고까지 3년이나 걸리는 바람에, 의뢰인이 대출받아 빌려준 금원을 변제받지 못했다"며 "결국 당사자가 제2, 3 금융기관에서까지 다시 대출을 받는 등 막심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보증금반환 청구소송 절차가 약 1년간 지연돼 금융기관에서 (전세보증금) 대출금 회수가 들어와 의뢰인이 신용불량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재판 지연으로 당사자가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던 사례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의료소송 진행 중 당사자가 사망해 소송수계 등으로 소송을 진행하는데 이 마저도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1, 2심에서 승소하고도 상고심에서 4년이나 선고를 미뤘다"며 "(재판부가) 선고를 지나치게 미루는 바람에 당사자가 결국 판결 결과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증언도 나왔다. 


● 재판지연 원인은 '법관 부족'... '워라밸' 중시 관념도 한 몫  

변호사들은 재판지연의 핵심 원인으로 '법관 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다'를 꼽았다. 또  △코로나 팬데믹 △당사자 소송 증가로 인한 파급효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판사들의 무성의한 태도 △고등부장 승진제도 폐지 △법관의 재량에 맡긴 기일 지정 절차 등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한 변호사는 "법원이 달라진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과소하게 판사를 뽑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며 "지금은 사건을 심리·판단할 인적 인프라가 법원에 적절하게 수혈되지 못해 재판지연이 고착화 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법관 정원을 법으로 규정함에 따라 쉽게 법관을 증원하지 못하고 나아가 사법부 예산 편성에 이를 반영해주지도 않는다"며 "관련 예산을 확대해 법관 정원을 전향적으로 증가시키는 방안이 (재판 지연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변호사는 "일·가정 양립의 가치가 중요해진 요즘 재판에만 매달려 있을 법관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판사 인력을 늘려 법관 1인에게 배당되는 사건 수를 합리적 수준으로 맞춰야 책임감 있는 재판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5년간 1심 선고에 2년 이상 걸린 '장기미제 사건'이 민사는 3배, 형사는 2배 늘어나 재판지연 문제가 안팎으로 심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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