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냈을 때 한국 법원이 아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분쟁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까지 건너가 송사(訟事)를 벌인 이유는'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산업계의 중론이었다.

소송을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주요 기술사항을 국외로 반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핵심기술 유출 논란도 일었다. 이를 두고 한 국제중재 전문변호사는 "우리나라도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했다면 해외에서 소송할 필요도 없고, 기술 유출 논란도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디스커버리 도입을 둘러싼 주장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5년 대법원은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현 한국법학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실심 충실화 사법제도개선위원회'를 꾸리고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대한변협도 현 집행부 출범과 동시에 디스커버리 도입 추진을 핵심 과제로 삼고 여러 갈래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마침내 진척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달 초 법원행정처는 '코트넷' 등 내부통신망에 '디스커버리 제도 연구반'에서 수행한 중간결과를 공유하고 29일까지 전국 법관들을 대상으로 제도 도입과 관련한 본격적인 의견 수렴에 나섰다. 법원은 10월 초 열리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 최종 연구·검토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비록 최종 결과가 완전한 형태의 디스커버리 제도는 아닐지라도 우선 첫 발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 법조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제도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간 이상, 더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정착하면 변론 전 충분한 증거 개시를 통해 실체적 진실 발견과 분쟁의 조기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 통해 법정에서 불필요하게 투입되는 소모적인 사회 비용이 감소하고, 판결에 대한 승복률이 덩달아 높아지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기층정서에 만연한 사법 불신을 극적으로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스커버리 도입이라는 재판제도의 혁신으로 사법 패러다임을 전환해 국민과 기업의 현실적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법  발판을 마련해야 할 때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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