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친구 얘기 듣고 해법 제시하는 것 즐겨... 늘 법조인 꿈꿔

착오송금 '횡령죄' 사건 기억 남아…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가" 화두에

"얘기 들어줘 고맙다" 의뢰인 말에 큰 보람… 경청하는 변호사로 남을 것

어느 곳이든 '숨은 고수'같은 사람이 있다.

겉보기엔 화려하지 않아도 실제로는 내실 있는 알맹이로 꽉 차있다. 언더독(under dog) 처럼 보이지만 실제 진검 승부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탄탄한 기본기와 실력으로 상황을 뒤집어 버리는 역전의 명수들이다.

대구 법조계에도 이런 변호사가 있다. 이진안(39) 법무법인 법여울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30대 중반에 로스쿨에 들어가 늦깎이로 변호사가 됐지만 올 상반기에만 국선 변호로 8건의 무죄를 이끌어내는 등 저력을 발휘했다. '늦게 자란 수염이 일찍 자란 눈썹보다 낫다'는 말이 꼭 어울린다.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법을 제시하는 걸 좋아했어요. 언제부터 인가 '의뢰인의 말을 경청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됐고, 장래희망에 늘 '법조인'을 적었습니다"

법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학내 고시반에서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우수한 고시반원에게 주어지는 공로상도 받았다. 무난히 사법시험에 합격할 줄 알았지만 그는 2차 시험에서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 사이 사법시험마저 폐지됐다. 하지만 법조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34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로스쿨에 입학한다. 로스쿨에서는 한참 어린 동기생들의 스터디까지 봐주면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3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졸업할 때는 성적우수상을 수상했다.

"돌이켜보면 베푸는 걸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고시 공부를 오래했다 보니 로스쿨에서도 동기 ·후배들 스터디를 조직해 공부를 봐주고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나눠주곤 했습니다. 원래 제가 그런 성향입니다. 천성불개(天性不改)라 고쳐지지가 않네요(웃음)."

간절했던 법조인의 꿈을 이뤄서일까. 이 변호사는 이제 막 경력 3년 차에 접어든 청년 변호사임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첫 번째로 맡은 국선에서 착오 송금된 돈을 써버린 채권자 사건을 맡아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하급심 판결을 이끌어 냈다(2020고단2294).

"한 자영업자가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대금이 있었는데, 상대가 계속 돈을 주지 않다가 실수로 많은 돈을 입금했습니다. 자영업자는 미수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상대방에게 돌려줬다 횡령죄로 기소됐어요. 기존 판례에 따르면 횡령죄가 성립하지만, 첫 재판에서 판사님이 '착오송금의 대상이 채권자인 경우에도 횡령죄가 성립하는 게 맞는지 검토를 해봐야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그때 머리에 망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기존 판례에 얽매여 특수한 쟁점을 주장할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관련 쟁점을 법리적으로 꼼꼼하게 구성해 주장했고 1,2심에서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변호사에게는 한 가지 특기가 있다. 기록에 나오지 않는 허점을 포착해 논리를 견고하게 재구성하는 기술이다. 맹점을 걷어내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의뢰인과 언성을 높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기록을 하나씩 보면서 의뢰인에게 '이거 잘못한 거 맞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의뢰인이 '변호사님은 저를 도와주시는 분인데 왜 죄인 취급을 하시냐'고 서운해 하더라고요. 그러면 의뢰인에게 '허점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이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록에 나오지 않는 요소들을 끌어내려고 계속 되묻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서는 절대 허점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국선 사건 중에서 의뢰인과 언성이 오가지 않은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이 변호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밀착 변호를 원칙으로'를 변호 철학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소송 준비 과정에서 직접 의뢰인과 상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뢰인의 말을 두 번, 세 번씨 반복해서 듣는 일도 많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단서나 사실조차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했다. 꼼꼼함이 어느새 애티튜드(Attitude)가 됐다. 

"의뢰인들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는 것을 시간낭비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반복적으로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부풀려지거나 축소된 사실관계를 짚어 진짜 팩트(fact)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기록에 나와 있지 않는 이면의 것'을 찾는 것이 변호사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소송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앞으로도 국선 사건을 계속 맡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겠다"고 밝힌 이 변호사는 자신의 변호 철학을 지키면서 '의뢰인의 얘기를 귀 기울여 잘 듣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의뢰인 중에는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 내 얘기를 믿고 도와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기록만 들여다보지 않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늘 의뢰인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저만의 변호 철학을 가슴 속에 새기고 사건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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