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판의 개요

2011년 3월 동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한 대규모 해일(이하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이 침수되었다. 사고로 인해 원전 전원이 내려가면서 노심 용융과 수소 폭발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고, 방사성 물질의 대규모 유출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도쿄전력이 고액의 손해를 입었다는 사유로 도쿄전력 주주들은 구 경영진 5명에 대하여 도합 22조 엔을 회사에 배상하도록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2022년 7월 13일 도쿄 지방재판소는 전 회장 등 4명에게 총 13조 3210억 엔 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원전사고를 둘러싼 경영진의 민사 책임을 인정한 사법적 판단은 처음이었고, 배상 금액도 일본 국내의 재판에서는 사상 최대 액수로 알려진 중요한 사건이었다.

2. 판결의 쟁점

재판에서 주로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1) 나라현의 지진조사 연구 추진 본부가 2002년에 공표한 ‘장기평가’의 신뢰성, (2) 쓰나미가 원전을 습격할 가능성을 구 경영진이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는지 여부 (3) 구 경영진이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지 여부 등이었다. 주주 측은 위 ‘장기평가’를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구 경영진은 쓰나미가 원전을 습격할 가능성을 사전에 인식하고 있었고, 필요한 대책을 취해야 했는데도 소홀히 하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구 경영진 측은 “‘장기평가’의 신뢰성이 낮아서, 쓰나미에 의한 피해는 예측할 수 없었다. 만일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들 대책은 늦었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장기평가’와 관련하여 “(장기평가는) 일정한 인증이 되어 상응한 과학적 신뢰성이 있는 지견으로, 이를 바탕으로 경영진에 쓰나미 대책을 의무화하는 것”이라고 인정함으로써, 주주 측의 주장을 거의 전면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당초 피고가 되었던 사람은 구 경영진 5명이지만, 배상명령을 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5명 전원이 대책을 강구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하였고 고모리 전 상무도 과실이 있었다고 보았으나, 고모리가 이사로 취임한 때가 지진 발생 직전년도였기 때문에 2년 정도 걸리는 ‘수밀화’ 대책을 지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이유로 배상책임은 없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원자력 부문 최고 책임자였던 무토 전 부사장이 ‘장기평가’에 대해서 신뢰성이 불분명하다고 판단하여 사고를 막기 위한 쓰나미 대책을 신속하게 추진하도록 지시하지 않았고, 그 밖의 4명도 무토 전 부사장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여 대책을 지시하지 않았음이 인정되었다. 도쿄전력의 담당부서가 이들의 지시를 받아 원전 건물 안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수밀화’ 대책을 취하였더라면, 중대사태를 피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원자력 사업자의 이사들에게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이후 각지의 원자력사업자의 경영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 배상금액과 판결의 의의

이 사건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하여 구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으로, 피고들의 배상은 주주가 받는 것이 아니라 도쿄전력이 받게 된다. 13조 엔이 넘는 배상금액이 인정 되었는데, 폐로와 오염수 대책비용이 1조 6150억 엔,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지급 합의된 7조 834억 엔, 오염제거와 중간저장의 대책으로 2019년도까지 소요된 4조 6226억 엔을 합산한 금액이다. 최종적으로는 위 비용이 도쿄전력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구 경영진에 의한 손해라고 인정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종업원이나 주변 주민 뿐만 아니라 국민전체에 대하여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나아가서는 국가 자체의 붕괴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원자력사업자에게는 만약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중대사고를 막아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경영진은 대응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원자력사업자에게 요구되는 안전의식이나 책임감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원자력 운용기업의 임원들에게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한편, 보다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는 등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이번 판결은 원자력 사업자의 이사들에게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이후 각지의 원자력사업자의 경영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4. 향후 전망과 기타 문제

원전사고가 발생한지 이미 11년이나 경과했지만, 그 피해는 여전히 깊고 광범위하다. 이번 재판 원고들은 여전히 사고 원인이나 경위를 검증하고 반성하는 프로세스가 지속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판결이 나오자 도쿄전력은 개별 소송에 관한 응답을 삼가면서도, 후쿠시마 현민을 비롯해 사회 일반에 사과 성명을 냈다. 다만 판결에 대해서는 검찰 대신 지정 변호사가 항소를 했고, 항소심 판결은 1월경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관련해서 구 경영진 개인의 책임을 묻는 형사재판도 진행되어 카츠마타 전 회장 등 3명이 기소를 당했으나, 도쿄 지방재판소는 2019년에 전 회장 등 3명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하였고 항소심도 지난 달 결심하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원고들이 주주대표소송에서 승소하기는 하였으나 손해배상금이 워낙 커 전액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비용도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데, 성공보수는 별론으로 하고 22조 엔을 청구하는데 소요된 인지대가 얼마인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백승호 전 효고현 변호사회장의 전언에 따르면, 구 경영진이 회사에 반환하라는 청구였으므로 청구금액에 관계 없이 1만3000엔의 인지대만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는 일본 회사법 제847조의 4가 주주대표소송을 재산권상의 청구가 아닌 소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부분은 향후 국내에서도 참작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허중혁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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