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아동복지법 개정안' 시행… 보호종료 나이 18→24세 연장

전문가 "자립지원요원 확충·정서적 지원·경제 교육 등 추가 지원은 미비"

'명의도용' 등 보호종료아동 범죄 노출 심해… 법률적 지원·교육도 절실

#보호시설에서 자란 박지해 씨는 만 17세, 미처 보호종료 나이가 되기도 전에 시설에서 퇴소했다. 몸이 많이 아팠던 지해 씨를 시설에서 돌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갈 곳을 잃은 지해 씨는 결국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삭막한 병원에서 지해 씨는 지독한 무기력함과 홀로 싸워야 했다. 그는 이른 나이에 퇴소하면서 자립지원금이나 자립수당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주변에 도와줄 어른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보호종료아동을위한커뮤니티케어센터'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의 간곡한 설득에 못이겨 지해 씨는 센터로 들어왔다. 그동안 병원 침대 한켠에 웅크려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던 지해 씨는 이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센터 직원이 되어 보호종료아동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열여덟 어른' 강영아 씨는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를 피해 양육시설에서 자랐다. 자립심이 강했던 영아 씨는 독립을 하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호종료가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만 18세가 되어 양육시설을 나와보니 현실은 냉엄했다. 세상 속에 던져진 영아 씨는 혼자가 된 듯한 막막함에 사로잡혔다. 제대로 된 자립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무엇부터 시작해야할 지 몰랐다. LH청년전세임대는 알아봐야 할 지식이 너무 많아 포기했고, 공공임대주택 지원은 존재 여부조차 몰랐다. 자립 후에도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휴대폰 개통조차 쉽지 않았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던 영아 씨는 이제 자신과 같은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고자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캠페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 지난해 7월 정부가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 지난해 7월 정부가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22일 개정 아동복지법이 시행되면서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질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개정법에는 보호종료아동의 의사에 따라 복지시설 등에서의 보호조치 기간을 최대 24세까지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보호종료아동 실태조사 관련 규정을 명시하고, 자립지원전담기관 설치·운영 근거와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자립정착금 및 자립수당 지급 근거 등을 마련했다.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은 만 18세가 되어 보호시설을 떠나야 청소년을 가리킨다. 그런데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정착금은 고작 500만 원 안팎에 불과하다. '자립'을 하기에는 비현실적으로 적은 금액이다. 따라서 의지할 곳 없는 미성년자들이 대책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보호조치 기간을 연장하고 △자립수당 지급 기간 최대 5년으로 확대(기존 3년) △자립지원금 액수 상향 △공공후견인 제도 도입을 통한 후견제도 보완 △주거지원 △자립지원 전담인력 확충 등을 골자로 하는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 아동복지법 개정했지만… 전문가들 "경제 지원 실질적 활용 위한 추가 대책 필요"

정부 발표 이후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지원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안팎으로 커졌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보이는 것'에만 치중돼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은 여전히 비영리재단과 활동가들의 몫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잇따랐다.

비영리단체인 '보호종료아동을위한커뮤니티케어센터(케어센터)'의 김주하 팀장은 개정 아동복지법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이 꼭 필요한 상태에서 법 개정 등으로 자립정착금이 늘어난 상황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다른 정책들은 아직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케어센터'는 현재 보호종료아동의 주거지를 구해주거나 다양한 취업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김 팀장은 "아이들이 자립정착금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같은 비영리재단에서 경제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총괄하고 있는 김성식 팀장은 "자립정착금 500만 원을 자기 계획에 잘 맞춰 사용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생전 처음 만져보는 목돈에 충동구매를 하거나 탕진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는 질책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평생 적은 용돈을 받으며 억제된 환경 속에서 살아오다가 갑작스럽게 주어진 목돈을 지혜롭고 계획적으로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립정착금이 확대되는 것 만큼이나 잘 사용될 수 있도록, 이번 정책안들에 이어 다음 숙제가 무엇일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보호종료아동들이 과연 24세까지 보호조치를 연장할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해 씨는 "보육원 등의 시설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엄격한 규율들이 상존한다. 보호조치기간이 성인 이후로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시설 내의 통금 및 금주와 같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며 "성인이 된 아이들은 어떻게든 시설을 나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할 것이므로, 시설 내 규칙을 완화해주는 등의 현실적인 조치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아 씨는 "기존에는 보호연장기간 동안 별도의 자립교육이나 자립지원 커리큘럼이 제공되지 않아 개별적으로 자립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며 "보호연장이라는 제도를 통해 당사자들이 자립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치들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강영아 캠페이너
△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강영아 캠페이너

● 시행 앞두고 있는 '공공후견인 제도'… "기피 우려, 자립지원전담요원 확충이 우선"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는 '공공후견인 제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공공후견인 제도는 긴급수술, 휴대전화 개통, 여권발급 등 보호자 역할이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실제 보호종료아동들은 긴급하게 수술을 받을 때마다 보호자 서명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식 팀장은 "그동안 보호자가 없어 발생하는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공공후견인과 같은 제도 보완은 필요했다"면서도 "아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공공후견인 역할이 법적대리권을 넘어 진정한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더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주하 팀장도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거부감과 기피감이 크기 때문에 공공후견인 제도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자립지원전담요원'을 확충하고 센터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립지원전담요원은 지역 내 모든 아동양육시설에 배치돼 아이들의 경제, 심리, 주거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도움을 주고 양육부터 관리까지 도맡아 수행한다. 하지만 대부분 시설에서 근무하는 생활복지사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개인별로 맞춤형 자립준비를 조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 팀장은 "자립지원전담요원들이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24시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퇴소한 아이들도 돌볼 수 있도록 인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비영리재단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아이들을 현실적으로 케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아 씨는 "경험에 의하면 자립지원전담요원들로부터 1년 한 두번 정도 사무적인 짧은 통화와 자립수준 평가 정도의 사례관리를 받았다"며 "이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전담요원을 늘리고 경제교육, 진로, 취업교육, 심리지원, 자립정보 등을 통합해 담당하는 인력이 보충한다면 자립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명의도용' 등 보호종료아동 대상 범죄도 흔해… "법조계가 나서주길"

△ '보호종료아동을위한커뮤니티케어센터'에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주하 국장(왼쪽)과 박지해 씨(오른쪽)
△ '보호종료아동을위한커뮤니티케어센터'에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주하 국장(왼쪽)과 박지해 씨(오른쪽)

보호종료아동은 만 18세가 되어 시설을 떠나지만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러한 공백기간에 많은 보호종료아동들이 범죄 등에 쉽게 노출되는데, 최근에는 '명의도용'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사회경험 없이 막 퇴소한 보호종료아동에게 접근해 "명의를 빌려주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속여 전문적으로 명의만 빼돌리는 브로커들이 제법 많다고 전했다.

지해 씨는 "아이들이 명의도용이 범죄란 것도 모르고 단순히 이름만 빌려준다고 생각하다보니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빌려주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이 때문에 20대 초반부터 400~600만 원씩 빚을 지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때 적절한 법률 조언을 구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전과자'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법률지식이 거의 없는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주하 팀장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빚을 고스란히 아이가 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 등 아이들이 겪는 법적 문제가 의외로 많다"며 "하지만 각종 서류를 발급받거나 정서적 도움을 주는 일과는 다르게 법률 조언은 시설이나 센터 내 선생님들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외부 법조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우리 센터는 법률자문을 해주는 로펌이 있어서 무료로 아이들의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지만, 더 많은 로펌이나 변호사단체에서 보호종료아동들을 위해 법률 상담과 법률 교육 및 자문 등을 활발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남가언·임혜령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