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근무 도중 법 분야 특화 필요성 느끼고 로스쿨 진학

밤에는 화재진압·낮에는 로스쿨 다니며 3년 넘게 '주경야독'

"동료 희생 없었다면 불가능… 이제는 내가 보답해야 할 때"

"소방법은 아직 미개척지… 최초의 소방 전문 변호사 꿈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강남소방서. 

조용하지만 언제 울릴지 모르는 화재 출동 경보 때문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기자가 조심스레 사무실 문을 열어젖히자, 때마침 적막을 깨고 내선 전화 한 통이 시끄럽게 울렸다.

"성 소방위님 계십니까? 법적으로 궁금한 게 생겨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소방서에서 법률 자문을 구하는, 다소 의아스러운 통화다. 곧이어 주황색 소방복을 입은 한 남성이 전화를 건네 받아 능숙하게 답변을 했다. 이 남성이 현직 소방관 변호사인 성민곤(변시 10회·사진) 소방위다. 그는 '소방관 출신 변호사'가 아닌, 정식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소방관 변호사'다. 최초로 소방관으로 근무하다가 로스쿨을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뜨겁고 검은 연기가 자욱한 곳에 들어가 불을 끄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동료들과의 끈끈한 유대감도 다른 일을 했다면 아마 느껴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변호사 시험을 합격한 뒤에도 소방관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소방관을 천직(天職)으로 여기는 성 변호사는 원래 공직을 꿈꿨다. 군 제대 후 신림동에 들어가 행정고시를 준비했지만 연거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오랜 수험 생활에 지쳐가던 때에 함께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지인이 '소방간부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단 수험생 신분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러다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형이 합격했던 소방간부시험이 생각이 났고, 소방관 업무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저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힘을 내고 다시 1년을 더 투자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소방관이 됐지만, 적성에 맞아 굉장히 즐겁게 일했습니다."

소방관으로 일하며 남다른 에피소드도 많이 겪었다. 특히 미숙했던 첫 소방 출동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영동대교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 이 과정에서 도로 밑 하천 길을 지나가던 행인이 크게 다칠 뻔 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보였고 "괜찮다"는 행인의 말에 돌아섰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그 상황을 제대로 수습했던 것이 맞나, 괜찮다고 말해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는데'하는 후회가 남았다고 했다.

소방관으로 만족스럽게 근무하던 그가 돌연 로스쿨 진학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우연한 기회 때문이다.

어느 날 '선배와의 대화' 시간을 통해 한 선배 소방관이 "현실에 안주해선 안 된다. 소방에서도 특화시킬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찾아 계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날 따라 이상하게 선배의 조언이 귓가를 맴돌았다. 

이어 성 변호사는 고시 공부를 하며 접했던 법학에 흥미를 느꼈던 사실을 떠올렸고, 그 길로 로스쿨 진학을 결심한다. 

"처음부터 소방에서 법 분야를 특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기 때문에 소방관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면서 밤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로스쿨에서 수업을 들었어요. 낮 시간 근무가 생길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빠지거나 휴가를 냈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통학시간과 쉬는 시간에 토막잠을 자며 버텼습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오히려 소방 훈련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흔쾌히 도전해 보라고 격려하고 도와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일과 공부의 병행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성 변호사는 이제 자신이 동료들에게 도움이 줄 때라고 말한다. 화재 진압이나 구급활동을 하다가 우연찮게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다. 이 때마다 많은 소방관 동료들이 법적인 조언을 듣기 위해 성 변호사를 찾는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 때마다 마음 깊이 뿌듯함을 느낀다는 그는 자신의 현장 경험과 결부된 자신의 전문성을 십분 살릴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 소방관들이 '조사서'를 작성합니다. 조사서는 추후 민·형사소송, 화재보험 처리 등의 업무에 활용되기 때문에 중요한 공문서입니다. 법적 측면까지 검토해 입체적으로 조사서를 작성한다면 당사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최근 제정된 소방시설법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으로 소방시설을 관리하는 방안 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사실 변호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소방관 변호사'로 먼저 길을 개척한 선배도 없어 막연하다"면서도 "최초의 소방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는 소방 전문 변호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선구자가 없어서 제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일례로 우리나라 각 소방서에는 아직 법무팀이 없습니다. 소방관들은 법적 도움이 필요할 경우 서울시 법무팀에 문의를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외부 조직이다보니 이런저런 불편함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동료들이 언제든지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소방관을 위한 마을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남가언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