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법원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사건을 판단하면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했다면 무효"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목적의 타당성 △당사자의 불이익 정도 △대상조치 도입 여부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 사용처 등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후 하급심에서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한 유효 판결이 연달아 나왔다. '정년연장' 자체를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보상으로 보거나 전직교육이나 퇴직금 정산제도 도입 등 불이익을 보전할 대상조치 마련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 판결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유무효 판단 기준을 정년연장형에도 참고할 수 있음을 명시했다.

이번 판결을 놓고 사용자와 근로자 측의 입장이 확연히 엇갈린다. 임금 협상 과정에서 노사 양측은 판결에 대해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기 일쑤다. 일각에서는 법적 공방도 불사한다. 개별 사안에 따라 유무효 판단이 달라지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느 한쪽도 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는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쉼 없이 발전을 거듭해왔다. 많은 근로자들이 공동체 정신에 입각해 회사와 국가를 우선 순위에 두었다.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과 공장을 자랑스러워 했고, 조직과 단체를 위한 헌신을 당연시 했다. 

하지만 산업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사뭇 바뀌었다. 근로자의 권리와 처우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만족스러운 근로 환경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요소다.    

이번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은 이러한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 정도'나 '대상조치 도입' 등을 임금피크제 유효성 판단 기준으로 삼은 것이 그 방증이다. 임금피크제 판결 이후 근로자들의 인식은 "더 일하게 해줘서 고맙다"가 아니라 "그래도 일한 만큼 급여를 받아야 한다"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없으면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는다. 청년세대의 일자리 창출과 고령 직원의 일할 권리는 기업의 경영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노사 양측이 너른 관점에서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 이유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혼란은 이제 시작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고 강화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면서 서로 상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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