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28일 방화테러 대책 관련 기자회견 개최

"희생자 조롱하는 병든 사회… 판결 신뢰 못해"

디스커버리제도 도입으로 사법 불신 해소 주장

△ 이종엽 협회장이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종엽 협회장이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변호사 10명 중 5명은 신변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고, 절반 가량은 소송 상대방 측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대구지방변호사회(회장 이석화)와 공동으로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영상(하단 영상 참조)을 시청하고, 애도와 묵념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협회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사법제도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오늘도 국민 개개인의 권익을 대변하는 직업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판과 수사 과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 재판결과에 대한 불복, 나아가 법조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우리 사회 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고, 법치가 유지되고 있다"며 "법률사무소 종사자에 대한 폭력 등 테러행위는 그 자체로 사법체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법치를 부정하는 반문명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설문 결과 신변위협 사례 중 49%가 사건의 상대방측으로부터 받은 위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법률사무소 종사자 등 법조인들을 향한 범죄의 동기에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오해, 재판 등 사법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법률사무소 종사자에 대한 테러 행위가 이어져 변호사의 정당한 변론 활동이 방해를 받는다면, 결과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권리 보호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변호사들이 국민의 법익 보호를 위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도 힘을 모아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 이석화 대구회 회장이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석화 대구회 회장이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희생자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이석화 대구변회장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고, 사무실은 방화 여파로 유독가스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태"라며 "시간을 다투는 급한 일은 겨우 처리하고 있지만, 동료들이 죽어 나간 건물 사무실에 홀로 있을 때는 무섭기까지 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영문도 모르고 숨진 희생자와 함께하겠다고,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방화 사건으로 변호사가 희생된 것에 조롱하거나 비난을 가하기도 하는데,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고육지책으로 일정 규모 이상 건물에 보안검색대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법안을 떠올려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잘 안다"며 "근본적으로 변호사제도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사법 테러라는 점과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법 불신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법에서 모든 사람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공표하고 있지만, 변호를 맡을 변호사를 테러하는 현실은 헌법마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만들 것"이라며 "우리 사회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사법 신뢰와 전문가 직역의 판단에 대한 권위와 존중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불 지르겠다"… 소송 상대방과 의뢰인 등이 신변 위협

이날 김민주 변협 공보이사는 6월 15일부터 약 2주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는 전국 변호사 중 1205명이 참여했다.

설문조사 결과, 신변의 위협을 받아본 적 있는 변호사는 48%에 달했다. 그 중 49%가 소송 상대방 또는 소송 상대방의 가족 등 지인이며, 44%는 의뢰인이나 의뢰인의 가족 등 지인이었다. 

실제 겪은 위협 행위로는 폭언이나 욕설 등 언어 폭력이 45%(448건)로 가장 많았다. 방화나 살인 고지 등 협박(14%)과 폭행 등 물리력 행사(9%)도 상당한 사례가 나왔다.

구체적 사례로는 △"밤길 조심해라", "가만두지 않겠다"며 폭력을 행사할 것처럼 협박한 사례 △사람을 동원해 법원, 법률사무소 등에서 위력을 행사한 사례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한 사례 △"수임료를 반환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한 사례 △"패소하면 자살하겠다"며 사시미칼을 소지하고 사무실로 내방한 사례 등을 들었다.

법조인들은 신변에 위협을 받더라도 대응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설문 결과, 변호사 86%는 신변에 위협을 받았을 때 신고 등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위협 정도가 경미하거나 보복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 처벌 가능성에 대한 회의 등이 그 이유였다.

△ 김민주 공보이사가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변협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김민주 공보이사가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변협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무실에 제대로 방호·방범시설이 갖춰 있는 경우도 드물었다. 변호사 72%(862명)는 "회사에 방호·방범시설이 없다"고 답했다. 방호·방범시설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에도 'CCTV 설치(230건, 35%)'가 가장 많은 응답으로, 실질적으로 피해가 벌어졌을 때 곧바로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풀이된다.

설문에 응답한 법조인 90%는 신변 위협 행위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변호사 업무 특성상 변호사는 신변 위협에 쉽게 노출된다. 심지어 신상정보도 쉽게 취득할 수 있으며, 업무 결과가 승패로 귀결돼 당사자들이 그 책임을 변호사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김 이사는 "기자회견에서 보여드리지 못하는 충격적인 위협 사례가 더 많다"며 "폭력이 법보다 가깝다면 변호사들이 제대로 된 변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당사자 말은 듣지 않는 재판… 디스커버리제도로 사법불신 해소해야"

이어진 질의응답시간에는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과 김관기 대한변협 부협회장(수습대책 소위원장)이 답변에 나섰다.

대구변회 차원에서 희생자에 대한 상담 등 준비 중인 부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 회장은 "초기에 제대로 위로를 해주지 못하면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사회적 분노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법무부 장관이 직접 문상을 하고 간 이후 많은 국회의원 등이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며 "처음엔 유족들과 장례절차를 의논할 때 경계의 눈으로 봤지만 나중에는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가 있던 건물에서는 이미 반 정도가 이사갈 정도로 '더이상 일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며 "대구시의사회에서 팀을 꾸려 희생자 유족 등에 대한 상담을 계속해서 해오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관기 부협회장이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김관기 부협회장이 28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린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사건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이 변호사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에 대한 질문에 김 부협회장은 "평소 쌓여있는 재판 불신이 야만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표출된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100년 전 악역을 맡은 배우를 쫓아가 테러를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긴 세월이 필요하겠다"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스커버리제도가 사법 불신 해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도 있었다.

김 부협회장은 "사법 불신의 원인 중 하나는 '당사자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며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증거를 제출할 기회조차 봉쇄하고 증인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로 31년간 업무를 해왔지만 '우리나라 재판을 믿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대부분 재판이 잘 진행되더라도 문제가 되는 건 항상 1%의 중요한 것들이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재판 전체가 오염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당사자들 제출할 수 있는 증거를 모두 제출하는 디스커버리제도와 이를 배심원이 결정하도록 하는 배심제가 결합될 때 비로소 우리나라 재판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디스커버리제도를 거치면 대부분 공판에 가기도 전에 사건이 종결됨으로써 오히려 비용도 아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변협은 사건 직후 '법률사무소 방화테러 대책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양한 대책을 준비해오고 있다.

우선 △법률사무소 종사자 대상 정기적 안전교육 실시 △방범·경비 업체와의 업무제휴 △법률사무소 종사자를 위한 방호 장구 공동구매 추진 등을 계획하고 있다.

관련 기관과 업무 협조도 진행 중이다. 지난 27일에는 법원과 실무미팅에서 법원 내 변호사 테러 사례와 유형 빈도를 전달하고, 테러 방지를 위한 대응책 마련을 위한 차기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청과는 16일 미팅을 하고, 폴리스콜 등 범죄예방책 마련과 업무협약 체결에 대해 논의했다. 법무부, 대검찰청과는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제도개혁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재)변호사공제재단 설립과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제도)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국회의원이 변호사 및 그 사무직원에 대해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업무를 방해하거나, 업무수행을 위한 시설·기재 또는 그 밖의 기물을 파괴·손상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김민주 공보이사는 "증거가 한 쪽에  쏠려있을 경우 실체적 진실 발견이 사실상 불가능해 재판 및 소송절차에 대한 불신이 심화될 수 있다"며 "소송 상대방과 제3자가 독점하고 있는 증거까지 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재판의 신뢰성이 확보되고, 사법불신 해소로 이어져 당사자 불만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법원과 공동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하반기 입법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론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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