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

오전 재판이 없는 날이라 밀린 서면을 쓰고 있었다. 고함이 들린다. 어느 사무실인가 확인하러 일어나려던 순간, 직원이 다급하게 방문을 연다. “변호사님, 불이 났어요. 피해야 합니다.” 이미 복도는 연기로 가득 차 나갈 수가 없었다. 아래층에서 올라온 동료 변호사 일행과 직원들은 모두 내 방에 대피하여 약 30분 후 구조되었다.

불이 난 사무실에 근무하던 두 변호사에게 연락하였으나, 통화가 되지 않는다. 20여 분이 지나 지방재판을 마치고 나오던 선배와는 연락이 되었으나, 후배는 그렇게 운명을 하였다. 아무런 잘못 없는 억울한 참사였다. 상대방 변호사를 향한 분별없는 분노였지만, 함께 근무하던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합동 장례식과 뒷수습을 하느라 10여 일을 정신없이 보냈다. 내 사무실은 여전히 유독가스로 업무를 볼 수가 없다. 직원들은 회관 강당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에서 급한 일을 겨우 처리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상으로의 전환이 안 된다. 혼자 있는 게 두렵다. 동료 변호사와 마주하면 눈물이 먼저 쏟아진다.

영문도 모르고 숨진 희생자들에게 함께 하겠다고, 당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간이 방독면, 산소발생 생명구조 타올, 가스총, 삼단봉 등을 마련하고, 고육지책으로 보안검색대 의무화 법률까지 떠올려보지만, 어느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무력감이 든다.

가해자 개인에게는 병적인 정신이상의 발로에 불과하지만, 이번 사건의 기본적인 성격은 변호사제도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사법 테러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 사법 불신이 깔려있다. 이러한 사법 불신의 풍토는 법조계가 자초한 면도 있지만, 정치권의 잘못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어도 판결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억울하다는 코스프레와 정치보복의 프레임을 덮어씌운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보여온 이런 행태가 전 국민에게 영향을 주고, 잘못된 사회풍토를 만들어낸 것이다.

변호사가 여전히 특권계층으로 인식되는 상황은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더한다. 국민은 2018년 기준으로 변호사 종합소득 평균 신고금액이 1억 1580만 원이라는 국세청 통계를 믿는다. 그러나 그 통계의 이면에는 6조 법률시장의 50%에 가까운 매출을 6대 로펌이 차지하고, 변호사 월평균 수임 건수가 1.26건이라는 참담한 현실이 있다. 변호사 대다수가 개인 사무실로 운영하고, 그들의 대부분은 사무실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사법을 불신하고 변호사가 여전히 특권계층이라고 생각하는 틀 속에 갇힌 사람 중에는, 희생자가 변호사라는 사실에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변호사는 소송에서 이겨도 안 되고, 져도 안 되며, 차선의 결과를 위하여 조정하면 그마저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야말로 길을 잃은 변호사다. 변호사가 길을 잃고 소신이 있게 변론하지 못한다면, 변호는 의뢰인의 주장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옮기는 스피커에 불과하다.

헌법에서 변호를 받을 권리를 아무리 외친들, 변호사를 테러하는 현실을 방치하고서는 무용하다. 사법 신뢰와 전문가 직역의 판단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지 않고는 신뢰 사회로 나아갈 수가 없다. 법조계의 치열한 자성과 전문 직종의 권위회복을 위한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위하여 모든 구성원이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님아, 그대가 좋아하던 ‘나비가 된 장자(莊子)’처럼 훨훨 날아, 길을 잃은 우리를 이끌어다오.

 

 

/이석화 변호사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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