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제3차 형사사법제도 개선 위한 설문조사' 실시

변호사 1,155명 참여... "'깜깜이' 수사로 국민들 피해 막급"

"현장 곳곳서 파열음... '검수완박' 강행은 엎친 데 덮친 격"

"경찰 역량 확충 필요... 검찰 권한 재정비로 견제와 균형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사건 부담이 폭증하면서 수사지연 등 여러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현장에서는 신속한 사건 처리를 요구하는 민원인과 변호인, 수사 부담이 늘어난 수사관들이 서로 "답답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아예 사법적 구제를 포기하기도 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시행될 경우 경찰과 국민들의 부담이 더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 "수사지연 이유 모르는 '깜깜이' 상황... 국민 피해 급증"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이달 6일~17일 총 12일 간 전국 변호사 회원을 상대로 '형사사법제도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회원들이 겪고 있는 애로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변협의 현황 파악은 이번이 세 번째로 지난해 8월과 12월에도 동일한 취지로 두 차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3차 조사에서는 전국 1,155명의 변호사들이 응답해 지난해(511명) 보다 표본이 두 배 이상 늘어 보다 정밀한 진단이 이뤄졌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3.5%인 849명의 변호사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조사가 지연되거나 연기된 사례를 직접 경험했다고 답했다. 수사지연 빈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782명의 변호사가 응답했는데, 고소 건수 대비 '50%이상'이라는 답변이 21%(168명)로 가장 많았고, 이어 '30%이상(112명)'과 '20%이상(103명)' 순이었다. 수사 종결시까지 걸린 기간은 '1년 내'라고 응답한 변호사가 44.1%(849명 중 374명)로  가장 많았다.  

'경찰이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거나 고소 취하를 종용하는 등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사례가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 가량인 541명(46.8%)의 변호사가 "있었다"고 응답해 사건 접수 단계부터 심각한 권리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추단케 했다.

심지어 응답 변호사 57%(1146명 중 653명)는 수사가 지연되는 사유에 대한 안내·설명·통지 등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안내를 받은 변호사 중 54%(526명 중 285명)는 "사건 및 업무가 과다하다"는 답변만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절반 이상의 변호사가 수사지연 사유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으며, 해명을 들은 변호사의 절반 이상은 "업무가 많아 지연되고 있다"는 답변만 들은 셈이다.

수사지연으로 인한 의뢰인의 반응에 대해서는 51.5%(1123명 중 578명)가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고 답변해 일반 국민들이 입는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 피해가 수면 위로 본격 떠오르기 시작하면 민심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피해를 입는건 대리인인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설문 참여 변호사들이 보내온 주관식 답변에는 △의뢰인의 불만·항의·갈등 △변호사 신뢰 하락 △선임취소·계약파기 등의 피해를 봤다는 호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부 의뢰인들은 변호사를 향해 "사건에 제대로 신경을 안 쓰는 것 아니냐", "변호사가 무능해서 그런 것 아니냐", "전관(前官)이 아니어서 별볼일 없는 것 아니냐" 등의 원색적인 비난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한 변호사는"경찰이 사건을 1년 이상 붙잡고만 있고,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아 의뢰인으로부터 '왜 사건이 진행되지 않느냐'는 항의를 자주 받는다"며 "경찰에 연락하면 '수사 중'이라는 답변만 받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수사지연으로)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고 현실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반 시민인 의뢰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에도 경찰이 꿈쩍조차 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있었다.

설문에 응답한 한 변호사는 "검찰에서 보완수사 요구가 내려진 사건을 경찰이 1년 이상 수사하지 않고 있다"며 "보완수사 지시를 받은 수사관에게 독촉을 해도 이제는 연락조차 받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 수사지연 원인은 "수사관 역량 부족"... 대책은?

경찰의 수사지연과 사건 적체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총 1,133명의 변호사가(복수 응답 가능) △경찰의 수사역량 부족(72.5%) △경찰의 과도한 사건 부담(62%) △검사의 수사지휘 폐지(34.8%) △검찰의 직접수사 폐지(29.7%) 를 수사지연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지연이 더 심각해졌냐고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1,155명)의 66.1%가 "심각해졌다" 응답해 수사권 조정의 여파와 후유증이 아직 상당 부분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답한 변호사는 5.6%(65명)에 그쳤다.

경찰 수사지연에 대한 대책으로는 △인력확충·교육·법률전문가 채용 등 경찰의 역량의 강화(192건) △검·경 수사권 이전으로 복귀(142건) △검·경수사권 재조정(73건) △기한명시 등 제도개선(64건) △기타(91건) 등 총 562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설문에 응답한 한 변호사는 "갑작스런 부담 증가로 현장에서는 시행착오에 따른 부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으로는 인원을 보충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찰의 역량을 강화하지 않는 이상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수사관 인력 보충이 절실한데, 경찰의 수사부서는 초과 근무시간도 많이 인정되지 않아 모두가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베테랑 수사관들이 다소 편한 지구대나 기동대로 옮기려는 경향이 있어 수사경력이 짧은 인력이 대부분의 수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의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법률전문가 영입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 변호사는 "경제 범죄의 경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현재 경찰 역량으로는 제대로 된 수사를 담보하기 어렵다"며 "변호사를 대폭 보강하는 등 양질의 수사 인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회복시켜, 경찰의 권한 독점을 견제하고 수사기관 사이의 건전한 긴장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변호사는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듯, 경찰 권력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며 "사실 평범한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공권력은 검찰이 아닌 경찰인데, 경찰 권한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검사의 수사 지휘권을 복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른 변호사는 "검사의 수사 지휘권을 인정해서 사건 초기부터 수사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를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수사를 해서 처분을 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서초동의 한 중진 변호사는 "경찰 조직은 행정 경찰과 사법 경찰이 혼재하는 상황이며, 수사를 전담하는 사법 경찰마저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종합적인 법률적 검토가 수반될 수 밖에 없는 수사 영역에서는 경찰의 수사 역량에 관한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문제가 수사 현장에서는 수사 지연이나 사건 접수 거부 등의 태양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수사에 관여하는 것을 박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사가 경찰 수사에 대한 수사지휘 등 사법 통제를 온전히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검사의 수사 개시부터 공소제기까지 국민이 직접 견제하는 ‘기소 대배심’을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국민·경찰 부담 큰데 '검수완박' 까지... "민생치안 산으로 가나"

민생을 책임지는 치안과 수사 현장 곳곳에서 이처럼 심각한 파열음이 들리는 와중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연일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은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돌입했다. 민주당의 단독 행동에 야당인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맞섰지만 민주당은 4월 임시국회 회기를 당초 5월 5일에서 이달 27일까지로 변경하는 회기 결정 수정안을 제출했다. 수정안은 재석 212인 중 143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 같은 '회기 쪼개기' 카드에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당일 자정 자동으로 종료되며 힘없이 마무리 됐다. 민주당은 오늘(30일) 새 회기를 열고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국민의힘도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안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검수완박' 중재안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종엽 대한변협회장인 비판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검수완박' 중재안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종엽 대한변협회장인 비판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한편 법조계와 시민 사회도 민주당의 성급한 검수완박 추진에 반대하며 대응에 나섰다.

대한변협은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 '검수완박' 졸속 추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변협은 성명을 통해 "검찰 수사권한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만으로는 기존의 검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국민 법익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권한이나 국민 참여를 확대해 검찰과 경찰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28일부터 서울 역삼동 대한변협회관에서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입법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를 매일 2시부터 6시까지 진행하고 있다. 시민 필리버스터에는 법조인·법학자 뿐 아니라 주부·대학생 등 일반 시민들도 함께 나서 국회의 검수완박 졸속 추진을 비판했다.

△29일 대한변협이 주최한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카이스트 학부생 조준한 씨가 연설을 하고 있다
△29일 대한변협이 주최한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카이스트 학부생 조준한 씨가 연설을 하고 있다

29일 필리버스터에 참가한 카이스트 1학년생 조준한 씨(21)는 "국민 입장에서는 검찰이나 경찰이나 큰 차이가 없으므로 이번 상황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격'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중수청 같이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도 수사 역량은 충분한지, 중립성은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진정으로 형사사법체계를 정상화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검찰 권한 뺏기'가 아니라 검찰 수사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며 "그런 역할은 검찰 스스로, 그리고 법원과 변호사단체가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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