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 대비 합격률 하락, 인원 증가… '1200명 이하' 법조계 요구 묵살

변협, 20일 법무부 앞 집회 열어 "무너지는 법률시장"에 우려 표명해

변호사시험 합격자(자료: 법무부 제공)
변호사시험 합격자(자료: 법무부 제공)

제1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1712명으로 최종 결정됐다. 정부는 변호사 배출수를 합리적으로 조절해달라는 현장 목소리를 다시 한번 외면했다.

법무부 제11회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는 20일 회의를 열고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712명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대비 합격률은 0.51%p 하락했지만 인원은 6명 늘었다.

관리위는 △작년 합격자 수 및 합격률 △응시자 증가 수 △법조인 증가 수 △올해부터 '오탈자'가 발생하는 7기 졸업생의 누적합격률 △올해 졸업한 11기 졸업생의 합격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격자 규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1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역시 올해 결정에 준해서 심의하기로 했다.

변호사 수는 2012년 로스쿨 출신 첫 합격자 1451명을 배출한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3~2018년 1500명대를 유지하다 2019년 1691명, 2020년 1768명, 2021년 1706명에 이어 올해 1712명의 신규 변호사를 배출했다. 입학정원 대비 합격자 수는 80%를 상회한지 오래다.

반면 법률시장 규모는 10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접수 사건 수는 2011년 1829만 5844건에서 2020년 1883만 8150건으로 집계됐다. 

법률시장 파이를 공유하는 인접 자격사 숫자는 급증하고 있다. 행정사만 40만 명에 세무사 1만 4681명, 변리사 1만 503명, 노무사 5067명 등 인접 자격사를 모두 더하면 작년 기준 57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배출되는 인접 자격사 수는 그 이전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수준이다.

법조계는 "유사직역 통폐합 약속은 지키지 않고 무책임하게 변호사를 대량 배출하는 정책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정부에 수차례 의견을 전달했다.

△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서 변호사 200여 명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를 하고 있다.
△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서 변호사 200여 명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를 하고 있다.

올해도 3월 28일부터 4월 19일까지 법무부가 위치한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지난 7일에는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회장 이임성) 주최로 변호사 100여 명이 운집해 집회를 열기도 했다.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가 열린 20일에도 변호사들은 한 자리에 모여 법조인 수급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가 주도한 이날 집회에서는 변호사 등 200여 명이 집결했다. 집회는 관리위가 시작된 오후 2시 이후에도 1시간 가량 더 이어졌다.

이 협회장은 "매년 변호사를 몇 명 뽑을지 미리 결정하지 않고 일단 시험부터 친다"며 "그러다가 변호사 수를 결정하는 날에 엿가락 늘리듯 합격자 수를 증원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이러한 법무행정 행태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변호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며 "온정주의를 과감히 떨쳐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합격자 수를 결정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임성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회장도 "일본에서 변호사 총량을 5만 명으로 정해 매년 약 1400명을 배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보다 인구수와 경제 규모 훨씬 더 큰 일본이 국가정책으로 변호사 총수를 제한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비판했다.

△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하채은 변호사가 의사발언을 하고 있다.
△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하채은 변호사가 의사발언을 하고 있다.

청년변호사들도 법무부를 향해 "무너지고 있는 법률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외침에는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절절함이 묻어났다.

2020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하채은(변시 9회) 변호사는 "변호사가 되어보니 법률시장이 얼마만큼 치명적으로 무너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며 "동기들도 법률전문가로서의 본질을 지키기보다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 변호사는 또 "변호사 수를 합격 발표 당일에 발표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며 "변호사들은 수험생 시절부터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로스쿨 도입 시 약속한 유사직역 통폐합을 전혀 이행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갈수록 유사직역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며 "이렇게 변호사 수만 계속 늘리면 국민도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사 수 감축을 위해 1인 시위를 8차례 했던 김은산(변시 1회) 변호사는 "법무부는 '응시자 수가 많으니 합격자 수도 많아야 한다'는 이유로 합격자 수를 결정하고 있다"며 "법조인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고려해서 적정 합격자 수를 약속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황진호 변호사가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의사발언을 하고 있다.
△ 황진호 변호사가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의사발언을 하고 있다.

지방 변호사들이 새벽부터 나와 법무부 앞에 집결했다. 88세 고령의 황진호(고시 13회, 부산회) 변호사와 도춘석 경남변회장, 진용태 광주변회장, 홍요셉 전북변회장 등이 의사발언을 했다.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레 연단에 올라선 황 변호사는 "얼마 전 원로변호사 한 분이 동료변호사들에게 돈을 빌린 후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다"며 "원로들조차 서로 돕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젊은 변호사들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속이 탄다"고 했다.

이어 "젊은 변호사들이 나이 들어서도 (경제적)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하고 싶은데 특별한 방도가 없다"며 "수입이 없는 젊은 변호사들이 어떻게 저축을 하고, 어떻게 노후를 준비할 수 있겠냐"고 우려했다.

도춘석 경남변회장은 "일본보다 경제 규모가 적은 우리나라에서 변호사수를 더 많이 뽑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으로 정책을 운영하는 게 문제"라며 "로스쿨과 변호사 기득권이 부딪치는 게 아니라 변호사들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충정어린 권고를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 이종엽 변협회장이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보도자료를 낭독하고 있다.
△ 이종엽 변협회장이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보도자료를 낭독하고 있다.

의사발언 뒤에는 성명 발표가 이어졌다.

변협은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가 도입한 영미식 로스쿨 체제는 법률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직이 변호사로 일원화되는 사회를 전제로 한다"며 "이러한 국가는 변호사 수가 늘어나는 대신 인접 직역 규모와 종류는 최대한 제한하고, 법률·관리직 공직자 채용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대상으로 선발하여 변호사의 진출로가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정부도 로스쿨 도입 당시 변호사 배출 수를 늘리는 대신 변호사 업무 범위와 중첩되는 법무사·노무사·행정사 등 인접 자격사를 단계적으로 감축, 통폐합하겠다고 했다"며 "이 약속은 10여 년이 넘도록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인접 직역의 규모와 역할은 나날이 비대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 등 권익 보호와 직결된 법률 전문직 면허시장을 국가가 이처럼 방치하고 있는 경우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며 "대다수 변호사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심각한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여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200명 이하로 결정할 것을 재차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 홍요셉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이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변호사 배출 수 감축 집회에서 "유사직역 통폐합 없이는 변호사 수 증원도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홍요셉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이 20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변호사 배출 수 감축 집회에서 "유사직역 통폐합 없이는 변호사 수 증원도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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