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 자격사 규모와 권한은 '확대'... 변호사는 오히려 줄어

"더이상 못참아"... 엉터리 법조인력 정책에 뿔난 변호사들

△일본의 세무사법 제3조. 일본은 변호사가 당연히 변리사와 세무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변호사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일본의 세무사법 제3조. 일본은 변호사가 당연히 변리사와 세무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변호사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변호사 업무 범위에서 '장부작성 및 성실신고 확인 업무(기장)'를 배제한 개정 세무사법이 시행된 지 넉 달 가량 지난 가운데,  우리와 유사한 법 체계를 가진 일본의 사례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같은 대륙법 계수 국가인 일본은 우리보다 5년 빠른 2004년에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 출범하는 등  그동안 사법정책 운영에서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다. 

일본의 변호사법 제3조는 '변호사의 직무'를 규정한다. 제1항은 "변호사는 당사자, 그 밖에 관계인의 의뢰 또는 관공서의 위촉에 따라 소송사건, 비송사건 및 심사청구, 재조사 청구, 재심사 청구 등 행정청에 대한 불복신청사건에 관한 행위, 그밖에 일반 법률 사무의 수행을 직무로 한다"고 정해 우리나라 변호사법과 일치한다. 

다만 일본은 제2항을 통해 "변호사는 변리사 및 세무사의 사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못 박아 변호사의 직무 범위에 변리사와 세무사 업무가 당연 포함돼 있다고 천명한다. 반면 우리나라 변호사법은 일본 변호사법 제3조 2항과 같은 규정이 없다. 

그동안 세무사법 제3조 제3호에서 '변호사 자격이 있는자'는 세무사 자격이 있는 것으로 규정해 왔으나, 2017년 법 개정으로 해당 항목이 삭제됐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는 '일반 법률사무'라는 포괄적인 업무 범위를 가진다. 제한적인 직무 범위와 한계를 가진 인접 자격사와 달리, 국가가 변호사에게 총괄적 권한을 부여한 이유는 변호사만이 고도의 전문성을 공인 받은 유일한 법률 전문직이기 때문이다. 

세무·행정·특허·노무 등 세분화된 영역에서 기능적 역할을 특화해 수행하는 인접 자격사는 법률 전문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당사자간 분쟁이 심화될 경우, 소송 대리권이 없으므로 이들의 역할과 권한이 언제나 제한적이다. 인접 자격사는 '분쟁의 종결자'로서 사안을 매조지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셈이다. 

일부 직역은 법조인 수가 극히 적었던 시대에 사법서비스 공백을 막기 위해 탄생했다. 부득이한 사회적 타협의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변호사 업무 범위에 100% 흡수되는 직역은 변호사 규모가 늘어나면 단계적 감축을 거쳐 폐지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유사한 사례는 의료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방 전후 의료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상황에서 정부는 전통 의료시술과 민간요법을 전승한 일부 인원에게 침구사와 같은 임시 자격을 부여하고 제한적인 의료서비스 제공 행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 한의사 등 정식 의료인 수가 늘어나자 정부는 70년대 이후 이러한 임시 의료인 자격 발행을 중단했다.

의료 교육과 시스템이 정상화되면서 임시 의료인 제도는 더 이상 운영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만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미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출처 : Freepik
출처 : Freepik

법조계에서도 이와 동일한 논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법조인 양성 제도가 사법시험에서 로스쿨로 바뀌는 과정에서 정부는 "법조 인접 직역의 단계적 감축과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규모가 작은 국내 법률시장 여건을 고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접 직역의 규모와 세력이 점점 커져가면서 변호사의 역할과 권한이 되레 축소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변호사로 하여금 세무대리 업무의 핵심인 장부작성·성실신고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한 세무사법 개악(改惡)이 대표적인 사례다. 변리사들도 이제 변호사의 고유업무인 소송대리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2020년 법무사는 법을 바꿔 개인회생·파산 신청대리권을 확보했다.   

정부가 법률사무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법조인력 수급체계를 엉터리로 운영한 결과다. "변호사를 늘려 양질을 법률서비스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제반 사항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재야 법조계를 가사(假死)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다.

△7일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주최로 열린 '변호사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황주환 부산변회장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7일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주최로 열린 '변호사 합격자 수 감축 집회'에서 황주환 부산변회장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상적인 경우라면 로스쿨 출범과 동시에, 행정사·법무사·노무사 등의 인접 직역 선발 인원을 감축하고, 종국적으로는 변호사 업무에 완전히 포섭시키는 법률전문직 일원화를 시도했어야 한다"며 "변호사 수는 무책임하게 계속 늘려가면서 인접 직역은 축소는 커녕 오히려 규모를 확대하면서 역할과 권한을 늘려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기원 한국법조인협회장은 "법무부는 2010년 '유사직역 통폐합' 관련 연구용역을 하면서 행정고시 폐지 후 변호사 특채 확대 등 변호사 직역 확대를 내세웠지만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조인력 제도는 일관성 있게 서구식 또는 일본식으로 통일해야 한다"며 "변호사 합격 인원은 서구식, 인접 직역의 권한과 규모는 일본식으로 하는 등 모든 요소가 변호사에게 불리하게 '뷔페식으로' 이뤄졌고, 결국 변호사 제도가 망가지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