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사법정책연구원·민소법학회, '소권남용 대응' 학술대회 개최

'연간 100건 이상 소 제기' 소송왕, 전국 법원 어디든 한 명씩은 있어

"영미법에는 '부당소송 규제제도' 두고 있어… 국내에도 입법화 해야"

"배급제 제도 도입해 제출할 수 있는 소송 건수 제한을" 주장도 나와

#'서초동 소송왕' A씨는 2014년 최초로 법원에 제기한 소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이후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대법원 등을 중심으로 소송물이 중복되거나 유사한 소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특히 2014년 58건, 2015년 42건 정도 수준이었던 A씨의 소 제기는 2016년을 기점으로 약 3000여 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자신의 사건을 담당한 법관이나 법원공무원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소를 제기하고 대법원에는 반복적으로 재심을 청구해 2020년에는 무려 2만 3000건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A씨는 인지 및 송달료는 전혀 납부하지 않았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B씨 모자(母子)는 식당 관련 사건에서 패소한 2017년 이후 유사한 소를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2020년부터는 법원에 직접 소장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전자소송제도를 악용해 서울 소재 법원 뿐만 아니라 지원을 포함한 전국 법원에 무차별적으로 제소 및 신청을 했다. 심지어 심급을 불문하고 자신들과 관련 없는 사건에까지 공동소송인 참가신청, 특별항고 등을 남발했다. B씨 모자가 제출한 소장의 청구취지에는 욕설과 비속어도 섞여 있었다. 

한 사람이 연간 100건 이상 유사한 소송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소권남용 문제가 반복되자, 외국처럼 부당소송 규제제도를 도입하거나 소권을 남용하는 사람에 한해 소송을 일부 제한하는 배급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사법정책연구원(원장 홍기태)과 한국민사소송법학회(회장 정선주)와 함께 18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에서 '소권남용의 현황과 대응'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정승연 판사가 '소권남용의 현황과 대응방안 일반'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소권남용의 현실과 대응 방안을 설명했다. 

△ 정승연 판사가 화상을 통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정승연 판사가 화상을 통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정 판사는 "우리나라의 부당소송의 현황을 살펴보면, 매번 한 명의 당사자가 연 100건 이상의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가 전국의 거의 모든 법원에 한 사람 씩은 있다고 볼 수 있고 특히 전자소송의 도입으로 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는 편의성이 높아져 전자소송을 통한 소권 남용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사법부의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근거 없는 청구와 신청이 계속됨으로써 법관과 법원공무원이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고, 부당소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으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실무에서 A씨의 경우 우선 A씨 이름으로 소가 제기되면 동일한 재판부로 배당해 변론병합 결정을 하고, 제소행위가 소권의 남용에 해당해 그 흠을 보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민사소송법 제219조 및 제413조에 따라 무변론 소각하판결 및 항소각하 판결을 하고 있다"며 "B씨 모자는 2020년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규칙 등에 따라 전자소송 사용자등록 정지·말소를 했고, 그 이후로 B씨 모자가 무분별한 소 제기를 하지 않아 효과적인 대책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와 B씨 모자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행법상 부당소송에 대한 대응제도는 △특정 재판부로 사건을 배당해 변론병합 및 기록 합철 △소장 기재 미비 및 인지·송달료 미납으로 인한 소장각하명령 △소송비용담보제공명령 △무변론 소각하·항소각하 판결 △전자소송 사용자등록의 정지·말소 제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판사는 현행 제도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하면서 단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판사는 "현행 민소법상 원고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기만 하면 소가 제기된다고 해석될 수 있고 전자소송은 전자문서가 전산정보처리 시스템을 이용해 제출돼 전자적으로 기록된 때에 접수된 것으로 보고 있어, 사전 접수단계에서 부당소송 대응이 불가하고 소장각하명령의 경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보정명령을 해야한다는 한계, 항소심에서 무변론으로 항소기간판결을 할 수 있는 근거규정미비 문제점 등이 있다"며 "전자소송 사용자등록은 개인회원과 법인회원으로 나누고 있는데, 법인회원에는 비법인 사단·재단도 포함하고 있어 개인 사용자등록이 정지·말소되더라도 법인회원 대표자로 우회해서 사용자등록을 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의 '민사절차금지명령'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부당소송인규제법' 등 영미법상 부당소송 규제제도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도 제도를 도입해 법원이 상대방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부당소송인에 대한 신청금지 및 소송금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부당소송인에 대해 소송절차 전반적인 대응이 필요하므로 일반 민소법에 규정을 신설하기 보다는 입법의 취지나 목적의 정당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부당소송인의 소권남용 방지를 위한 법률'과 같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으로 보이고, 이 밖에도 △부당소송 전문재판부의 설치 △종이 사건에 대한 전자기록화 명령 △무변론 각하판결의 폭넓은 활용 △전자소송 사용자등록 정지·말소 제도의 개선 △소송구조제도의 정비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관기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소권남용 문제의 대응책으로 '배급제 도입'을 주장했다.

김 부협회장은 "소액사건에서 인지가 저렴한 현실에서 이런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황당한 재판을 마구 청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배급제 제도를 도입해 개인적으로 제출할 수 있는 소송의 건수를 제한해야 한다"며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소비자들이 원고로서 소송을 제기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남소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해진 범위를 넘어 소 제기를 해야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개인사업자인 경우 영업상의 채권을 소송으로 행사해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에는 직업상의 기강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통해 배제될 수 있는 소송대리인을 통해서만 제기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며 "소송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소비자에게는 소송구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이날 이계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부당소송에 대한 영미법상의 대응방안 및 도입가능성'을, 황재훈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가 '프랑스법상 부당소송 대응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에는 정영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 전경훈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 이형준 서울고법 사무관, 박수연 법률신문 기자 등이 참석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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