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권 전문 변호사 꿈 안고 특허법인·특허청 등에서 일 해

'로펌은 왜 상표출원 할 수 없나' 의문 갖고 있다 사건 맡아

누구도 의문 제기않던 특허청의 명백한 부당 관행에 '제동'

"출원 업무 등한시한 인식 바꾸고 원스톱 서비스 제공하길"

"구(舊) 변리사법에서 개인 변리사와 특허법인만 특허대리업무를 할 수 있다거나, 법무법인이 변리사 자격 있는 변호사를 담당변호사로 정해 특허대리업무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 바 없다."

지난달 10일 대법원이 선고한 한 판결에 법조계 시선이 집중됐다.

변리사 자격 있는 변호사가 소속된 B법무법인에 상표출원 대리를 의뢰한 A씨가 "B법무법인 명의의 상표출원 대리를 허용해달라"며 특허청을 상대로 낸 상표등록출원 무효처분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이 이 같이 판시하며 A씨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 동안 법무법인의 출원 대리를 허용하지 않던 특허청의 잘못된 관행에 마침내 제동이 걸렸다.

발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5년 B법무법인은 의뢰인인 A씨로부터 상표출원 대리를 위임받아 특허청에 출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특허청은 "변리사가 아닌 자는 심사·심판의 대리 업무를 할 수 없고 법무법인은 변리사법에 따른 변리사가 아니므로 출원서를 제출할 권한이 없다"며 보정 명령을 했다. B법무법인이 보정에 응하지 않자 특허청은 상표등록출원을 무효처분 했다. 

수십 년간 별다른 의심없이 이뤄지던 관행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변리사가 속한 법무법인은 왜 출원을 못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 많은 변호사들이 공감했고, 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대한변협과 특허변호사회가 지원에 나섰다. 중론은 취소소송을 진행하자는 쪽이었는데, 누가 사건을 맡을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 때 관계자들의 시선이 손보인(변시 1회) 변호사에게 쏠렸다. 

"이공계 출신이었기 때문에 변호사가 된 후부터 전공을 살려 특허 관련 업무를 해왔습니다. 당연히 저도 '변호사가 변리사 자격도 가지고 있는데 법무법인은 왜 상표출원을 할 수 없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었어요. 이번 사건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됐을 때 출원 변리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특허청 심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던 제가 대리인 물망에 올랐고, 저도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도 해결할 겸 사건을 맡게 됐습니다(웃음)."

손 변호사는 "어쩌다보니 사건을 맡았다"고 멋쩍게 웃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이번 사건에 알맞은 적임자였다.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 손 변호사는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에 진학했다. 2012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에는 독특하게도 로펌이나 법률사무소가 아닌 특허법인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지재권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특허 실무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특허청과 공익변리사 특허상담센터, 한국지식재산보호원 등에서 활약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뚜렷한 법적근거 없이 자행되어온 관행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손 변호사는 "(특허청의 법무법인 출원 반려는) 법률 서비스를 받는 국민에게 불편함을 주는, 당연히 바꿔야 할 행정기관의 부당한 관행이었다"면서도 "그동안 이러한 관행에 대해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사실이 아쉽다"고 술회했다. 

"특허청에 출원을 하려면 양식에 맞춰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 양식에 대리인 코드를 적는 공간이 있어요. 그런데 대리인 코드는 특허법인과 변리사에게만 발급되고, 법무법인은 코드 자체가 없습니다. 법무법인은 출원서 제출조차 못하는 셈이지요. 이는 명백한 특허청의 절차적 불비(不備)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법무법인들은 여러 이유에서 출원 업무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의뢰인이 상표출원을 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변리사에게 사건을 넘겼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판에서 손 변호사는 변호사법 제49조를 근거로 법무법인이 특허청을 상대로 상표출원을 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연혁적으로 법적 근거가 명확했기 때문에 승소를 확신했고, 그의 예상대로 1심과 2심은 물론이고 대법원까지 손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이번 판결로 많은 의뢰인들이 특허 사건에서 원스톱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반적으로 상표출원 사건은 단 건으로 법무법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막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나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이 법무법인을 찾아와 사업 초기에 필요한 다양한 법률자문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요. 그 안에서 지재권 문제, 특허·디자인·상표에 관한 침해 문제, 그리고 출원 문제 등이 파생돼 나옵니다. 이제 법무법인 명의로 특허, 디자인, 상표 등의 출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의뢰인들이 출원 업무만 따로 떼어 변리사를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법무법인에서 출원 업무를 포함한 모든 법률자문부터 송무까지 종합적인 원스톱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손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종합적인 법률서비스를 체감할 수 있도록 법무법인도 산업재산권 출원 업무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출원 문제는 주로 제품 개발 단계에서 나옵니다. 기업이 성장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이에 따라 출원 사건도 꾸준히 생깁니다. 소송은 사건이 해결되면 끝나지만, 출원 업무는 한 건이 오면 그 뒤에도 계속해서 관련 업무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연속성과 중요성을 간과하고 출원 업무가 큰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등한시 해왔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제 법무법인 명의로 출원도 할 수 있게 됐으니 변호사님의 시선도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지식재산권(IP)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손 변호사는 자신과 같은 이공계 출신 변호사들이 특허 및 상표출원 업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격려의 말을 남겼다.

"그 동안 이공계 출신 변호사들은 자기 전공을 살려서 출원 업무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IP 시장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곳입니다. 더 많은 변호사들이 IP 시장에 진출해 국내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를 기대합니다." 

/남가언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