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을 좋아한다. 물론 개인적 취향이다. 중편과 장편, 대하소설도 저마다 맛이 있다. 그러나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단편소설만큼 쉽게 손에 잡고, 가볍게 읽기는 쉽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갈 때, 밤잠 못 이룰 때,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단편소설은 그야말로 좋은 친구가 된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그 내용의 깊이가 얕다고 할 수 없다. 함축성이 주는 여운은 오히려 길고 깊다.

겨울의 막바지, 봄의 기운이 움틀 요즘이면 평소보다 더 자주 서점에 들르곤 한다. 마치 그 해의 ‘보졸레누보’를 기다리는 와인 애호가처럼,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바로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다. 1976년이 1회였으니, 어느새 45회를 맞는다. 해마다 ‘이번에는 누구의 어떤 작품이 대상이 됐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기대하기도 한다. 또 올해의 소설의 맛은 어떤 풍미와 식감을 가지고 있을까 기분 좋은 상상에 젖기도 한다.

2022년 대상 수상작은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이다.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을 불장난이라는 상징적 모티브로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읽는 내내 나의 청소년기도 돌아보게 된다. 아슬한 금기의 도전인 ‘불장난’의 기억을 통해 ‘글쓰기’로 향하는 고뇌도 함께 느껴본다. 강화길 작가의 ‘복도’ 염승숙의 ‘믿음의 도약’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 이장욱의 ‘잠수종과 독’ 서이제의 ‘벽과 선을 넘는 플로어’ 최은미의 ‘고백’이 올해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작품들은 대체로 거대담론보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일상의 소재들을 담고 있다. 서민형 임대아파트에서 넘을 수 없는 계층 간극을 복도로 표현한다든지, 부동산 값 폭등으로 열악해지는 생활의 비루함이라든지, 층간소음 속 관계와 독거노인의 외로움 등 우리 삶 속에 담긴 흔한 일상의 갈등과 모순을 크게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과거 수상작들과 비교해보면 좀 더 현실적이고 성찰적이어서 좋기도 하지만, 풍자와 해학으로 크게 웃음을 주는 작품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매해 만나는 작품집은 내게 새로운 세계와의 소통이다. 당대 내놓으라 하는 작가들의 멋진 이야기 향연이다. 사람을 느끼게 하고 시대와 공감하며, 더 큰 세상을 꿈꾸게 한다. 작품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생각은 깊어지고, 시야는 넓어짐을 느낄 수 있다. 올해 작품들 또한 그러하다. 좋은 글을 읽는다는 것은 좋은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고급 요리들이 맛나게 차려진 풍성한 메뉴의 뷔페식당과 같다. 충분히 배가 고프다면, 그리고 맛을 느낄 준비가 있다면 올해부터라도 차곡차곡 멋진 작품들과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요즘이라 더욱 일독을 권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작은 동네』(손보미, 문학과지성사)

『마음의 부력, 2021년 제44회이상문학상 작품집』(이승우, 문학사상)

 

/장훈 한국수자원공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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