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지난달 27일 시행…변호사단체·로펌, TF 발족해 대응

노무사회도 산업안전센터 설치…"중대재해는 노무사 전문 영역" 주장

"노무사, 형사절차 관련 법률상담 및 고소·고발 못 해" 대법 판결 나와

"형사법 지식 없는 노무사는 중처법 수사 관련 법률상담 하지 말아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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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되면서 산업계와 법조계의 이목이 동시에 쏠리고 있다. 기업들은 '처벌 1호'가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법 시행 전부터 법률 자문을 받기 위해 일찌감치 서초동을 찾았다. 대형로펌들과 노동전문 변호사들도 관련 웨비나를 활발히 개최하고 리서치 활동을 강화하는 등 법 시행에 따른 자문수요에 대비했다. 그런데 최근 법률전문가도 아닌 공인노무사들이 갑작스레 '중대재해처벌법 전문가'를 표방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변호사단체·로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 분주= 지난 10년 새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 등 산업재해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세월호 사건 등 사회적 참사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중대재해' 문제가 사회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에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사고가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형사 처벌함으로써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방지하고자 지난해 1월 26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크게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산업재해는 건설물·설비·원재료·가스·증기·분진 작업·업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또는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또는 △동일 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법이 본격 시행되자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변호사단체와 로펌 등에서는 TF팀(Task Force, 테스크포스)을 발족하고 연구 활동에 착수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는 지난 9일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TF'를 출범시켰다. 위원장은 정원진(사시 37회) 변호사가 맡았으며, 20여 명의 전문 변호사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TF는 법이 적용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연구해 문제점 등이 없는지 검토하고, 추가 입법이 필요한 사항을 집중 연구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TF'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TF'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각 로펌들도 법 시행 전부터 중대재해처벌법 내용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웨비나를 활발히 개최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광장, 대륙아주 등은 중대재해 사건을 담당할 팀을 재·개편하고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등 대대적인 빌드업(Build up)에 나섰다. 법무법인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는 중대재해대응센터 및 대응본부, TF 등을 설립하고, 유관 사례를 분석해 신속하게 기업별 대응 시나리오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 일부 로펌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대상 1~3호'로 거론되고 있는 삼표산업, 여천NCC, 요진건설산업 등의 법률자문을 맡아 발빠른 대응에 착수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올해 로펌 내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중대재해처벌법이 될 것"이라며 "팀 내 변호사들은 평일 저녁, 주말 할 것 없이 매일같이 법 해석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법이 이제 막 시행되면서 아직까지는 산업 현장이 다소 혼란스러운 가운데, 선제적으로 합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직역은 법률전문가인 변호사 밖에 없다고 보고,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전문가는 노무사?…대법, '월권 행위' 제동= 한편 공인노무사들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자신들의 '전문 영역'임을 내세우며 이같은 흐름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공인노무사회는 18일 '산업안전보건지원센터'를 열고 산업안전보건 영역에서 공인노무사의 업무 영역을 보다 공고히 하겠다며 조직적 대응에 나섰다. 노무사들은 센터를 통해 공인노무사법상 노동관계법령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추가하는 등의 법 개정도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노무법인도 중대재해예방 TF를 발족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노무사들이 업무범위를넘어 법률상담까지 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대법원은 노무사가 형사절차 과정에서 수사결과 보고서, 피의자 신문조서 등의 자료를 기초로 의뢰인에게 법률상담을 해주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판시해 노무사의 월권 행위에 제동을 가했다(2015도6326). 법원은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형사 고소·고발 등 법률문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것도 노무사의 직무 범위를 넘어선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형사소송법 등은 노동 관계 법령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공인노무사가 의뢰인에게 노동 관계 법령에 관한 내용을 넘어서 수사절차에 적용되는 형사소송법 등에 관한 내용까지 상담을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인노무사법에 따른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고소·고발은 노동관계 법령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등에 근거한 것으로 고소·고발장 작성을 위한 법률상담도 공인노무사법상 '노동관계 법령과 노무관리에 관한 상담·지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부터 노무사업계는 관련 사건을 맡기 위해 의욕적으로 영세 기업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나 홍보를 대대적으로 이어왔다. 하지만 사법부에 의해 노무사는 산재·중대재해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처음에 싼 비용에 혹해서 노무사에게 자문을 구했다가 사건이 잘 풀리지 않자 뒤늦게 변호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법률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잘못된 상태로 올 때가 굉장히 많다"며 "의뢰인이 원하는 것은 결국 '법률 자문'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이 훨씬 쉽게 일이 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인노무사회는 21일 대한변리사회, 한국세무사회, 한국관세사회,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등 법조 인접자격사들로 구성된 전문자격사단체협의회 명의로 21일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무사는 형사법 지식 없어…'변호사제도 일원화' 적극 추진"= 그러나 법조계는 "노무사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직업이 아니라 인사·노무와 관련된 상담을 하는 직업이므로 법원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온 만큼, 노무사들이 직무 범위를 넘어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관련 법률상담 등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7월 타 직역의 변호사 직역 침탈 시도 등을 막기 위해 '법질서위반 감독센터'를 개소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7월 타 직역의 변호사 직역 침탈 시도 등을 막기 위해 '법질서위반 감독센터'를 개소했다.

직역수호변호사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정욱(변호사시험 2회)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노무사는 형사법 공부를 하지 않는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전혀 모르는, 형사법적인 지식이 일반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직역에서 형사 사건을 그동안 사실상 대리하다시피 월권 행위를 했던 것인데, 그 자체가 무자격자의 대리나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울회는 직역수호센터를 설립하고 모든 변호사법 위반 사항들을 제보 받은 뒤 이를 매주 상임위원회 검토를 거쳐 고발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 건 외에도 노무사들이 본인의 영역을 넘어서 변호사업에 해당하는 영역까지 침해하는 사례가 다수 제보됐고 그 동안 수십건을 고발했는데,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온만큼 중대재해처벌법 관련해서 이 같은 월권 행위가 더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대광(사시 51회)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은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수사가 개시되면 거기에는 형사법적 문제, 노동청에 대한 행정법적 문제, 이해 관계자들 사이의 민사법적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게 되는데, 노무사는 형사법, 민사법, 행정법 등 법률 전반에 관한 소양을 갖춘 자격사가 아니"라며 "이러한 자격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법률상담 등) 변호사의 업무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이 온전히 누려야 할 법률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킬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더 이상 마치 합법인 것 마냥 노무사가 법률상담 등을 하는 위법한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한변협은 법조인접자격사제도를 변호사제도로 일원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사무총장은 "향후 전문자격사제도의 직무 범위와 관련한 전문자격사법 개정을 논의할 때에는 법률사무의 일부를 다루는 전문자격사는 고도의 전문지식과 법률적 소양을 갖춘 변호사제도로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 증진과 로스쿨 도입 취지에 비추어 타당하다"며 "변협은 변호사제도 일원화를 통해 국민이 법률사무 전반을 취급·처리하는 법률 전문직인 변호사로부터 온전한 법률서비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더불어 법조인접자격사의 단계적 폐지를 위한 논의도 진지하게 시작돼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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