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야간 로스쿨 등 '변호사 공급확대' 공약 남발

"온라인 로스쿨, 교육 아닌 시험 중심 제도로 갈 것"

"1년차 변호사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 미달한 수입"

"의사 부족하다고 1천명씩 늘리나...변호사만 타깃"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여야 후보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여야 후보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 A변호사는 최근 부동산 중개료 3000만 원을 받지 못했다는 한 공인중개사의 사건을 맡아 1심에서 승소했다. 그가 받은 보수는 300만 원이다. 1년 넘게 법원과 의뢰인 사무실을 오가며 업무를 처리했지만, 수입은 한 건에 3000만 원을 받은 중개사의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B변호사는 최근 한 감정평가사에게 부동산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평가사는 1주일 만에 감정료로 400만 원을 받아갔다. 반면 B변호사는 2년 넘게 해당 부동산이 연루된 소송을 처리하면서 겨우 330만 원의 수임료만 받았을 뿐이다.

송무 시장이 심상치 않다.

정부의 법조인력 수급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변호사 보수가 비정상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개업·청년 변호사들 중에는 이미 최저임금 미만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직역 자체가 생존 기로에 놓여 있다는 위기의식이 서초동을 잠식하고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을 3주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의 사법정책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하지만 법조인 수급 정책공약에 대해서는 대다수 변호사들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2월 11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온라인·야간 로스쿨을 설치하고, 신규 로스쿨(주간)도 추가로 인가하는 내용을 정책공약집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러한 공약이 현실화 된다면 신규 배출되는 법조인 수는 폭증이 불가피하다. 

지난 2020년 박주민·백혜련 의원실에서 주최한 '온라인·야간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국회 토론회'에서 최정한 방송통신대학 법학과 교수는 온라인 로스쿨 입학 정원으로 200명을 제안했다. 또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약 300명의 인원을 야간 로스쿨 정원으로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정원을 조정한다 해도 추가로 인가 되는 로스쿨 인원까지 고려하면 매년 2000~2500명의 법조인이 배출된다는 셈법이 가능해진다. 지난해 치러진 제10회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수는 1706명이었다.

변호사들은 "의사를 온라인으로 배출할 수 없듯이, 법조인도 온라인으로 양성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포퓰리즘에 편승하지 말고 로스쿨 도입 당시 약속했던 유사 직역 정리부터 해결해 달라"는 입장이다.

김민규(변호사시험 3회) 대한변협 제1교육이사는 "내로라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3년 이상 온전히 집중해서 공부해도 상당수가 낙오할 정도로 법학은 방대하고 난해한 학문"이라며 "의학 지식을 온라인으로 배운 뒤 의사고시만 통과해서 의사가 될 수 없듯이 변호사도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서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경험을 돌이켜 봐도 생업과 병행하면서 온라인으로 배운 내용은 전일제로 집중해서 익혔던 내용에 비해 학습효과가 떨어졌다"며 "생계가 걱정되는 분들을 위해서는 로스쿨 장학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최병석(변시 5회) 대한변협 제2교육이사도 "온라인 로스쿨은 아무래도 '로스쿨'보다는 '온라인'이라는 점에 방점이 놓여있고, 제도의 성격상 법조인 양성 과정을 '교육 중심'에서 '시험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든다"며 "지향점이 '시험'에 있는 교육방식은 필연적으로 높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 연간 17조 원의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는 현행 공무원시험 제도가 이를 방증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정상적인 법학교육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온라인 로스쿨은 시험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으므로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당초 로스쿨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며 "고시낭인 등 문제가 불거져 로스쿨이 도입돼 자리를 잡았는데, 14년 만에 다시 근간을 뒤흔드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로스쿨 추가 인가도 부적절하다는 평가다.

김민규 이사는 "현재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로스쿨의 전체 정원인 2000명을 국내 법조시장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로스쿨의 추가 인가는 필연적으로 고비용·비효율을 유발하는 소규모 로스쿨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사 업계의 아우성에도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철 마다 '변호사 공급 확대' 카드가 약방의 감초처럼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 중인 한 국회 보좌관은 "국민들은 여전히 변호사 비용이 비싸다고 여긴다"며 "변호사들이 강력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 인식"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변호사 비용을 낮추겠다고 말하면 표가 된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하지만 산업과 업역을 막론하고 시장 생태계의 하방이 무너질 정도로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서초동의 한 개업변호사는 "국민 입장을 고려한다는 핑계로 서비스 비용을 무조건 낮추는 쪽으로 가는 것은 포퓰리즘적인 발상"이라며 "택시비가 낮을수록 좋다고 기본 요금을 1000원, 500원으로 낮출 수 없는 것처럼, 서비스 품질과 노동 가치에 걸맞은 합리적 비용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중교통 비용을 낮춘다고 택시 면허를 남발하거나, 의료 수가를 낮춘다고 갑자기 의사를 1000명씩 더 뽑지는 않는다"며 "오직 변호사 직역만 무제한 공급해도 된다는 이상한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다"고 성토했다.

실제로 변호사 '몸값'은 이미 수년째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대한변협이 1년차 변호사들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절반 가량이 최저임금 이하의 수입을 기록했고, 평균 보수는 월190만 원에 그쳤다. 변호사를 주임이나 사원으로 채용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빅펌'이라 불리는 극소수 대형로펌 취업자 등을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면서 변호사 공급 확대 주장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월 제11회 변호사시험에 응시한 A씨는 "그래도 꽤 이름이 알려진 로펌에 수습 면접을 봤는데 세전 150을 주겠다고 했다"며 "'우리가 일을 가르쳐 주니 교육비를 낸다고 생각하라'는 파트너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최저임금이 190만원 넘는데 이건 좀 심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공공 분야에서의 법률 수요를 늘려서 해결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재명 후보 대선캠프 사법대전환위원회 위원인 김지미 변호사는 지난 11일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에서 후원한 'MZ세대 법조인, 법조계 미래를 묻다' 토론회에서 "청년 변호사들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변호사 수는 급증했지만 우리 법률문화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공공영역 등 변호사가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을 늘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한 청년 변호사(대구회)는 "매년 쏟아지는 신규 법조인을 공공기관이 오롯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공공기관 채용 확대처럼 한계가 뚜렷하고 막연한 주장보다는 '변호사 지정감사제'를 도입하는 등 민간 수요를 자극하거나, 공급을 합리적인 선에서 통제하는 것이 맞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민규 이사는 "아직 법조 문턱이 높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비효율적인 사법 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변호사 숫자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며 "변호사 숫자를 더 늘리기 보다는 디스커버리 제도와 국민 대상 법률보험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법 시스템을 개혁해 법조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로스쿨 도입 당시 약속했던 대로 법률 전문직역을 변호사로 일원화하고, 인접 자격사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통폐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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