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절 전 일본 여행을 자주 다니던 때에 놀이공원에 가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휠체어를 탄 분이 놀이기구를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모두 기다리고, 그게 당연한 생활이었던 점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너그러웠다. 우리 아이가 한국인인 외국인 아동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이가 기구를 탈 때나, 내릴 때 충분히 기다려줬다. 물론 일본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어떠한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관광객으로 보았을 때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놀이공원에 가면 일단 휠체어를 잘 볼 수 없다. 그리고 놀이공원에서는 효율적이고 빠르고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 아이들도 빨리 기구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곧바로 타지 않을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한 점들이 ‘장애인은’ ‘아이는’ ‘노인은’ 이라는 시선을 만들고 결국 분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해외에서는 쇼핑몰이나 도서관에서도 자주 장애인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한국에 장애인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사실 뭐든지 어릴 때부터 경험하면 다른 것이 옳지 않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통합교육이 중요하고, 통합교육을 통하여 우리는 모두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장애를 가진 분의 사연을 담은 기사나 사건이 있는 경우, 댓글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댓글에서는 ‘민폐’ 또는 ‘격리’ 등의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낸다. 백신 패스로 인한 제한에도 우리는 인권 침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의 평생을 격리해야 한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누구도 그러한 권리를 가지지 않았다. 우리가 어린 시절 술래잡기를 할 때 더 어린아이를 깍두기로 함께 어울려 놀았던 것처럼 다시금 그러한 사회가 오길 기대한다. 즐겁게 좀 더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그래도 밝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하다. 그러니 이제는 불편함에 누군가를 격리하자고 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송혜미 변호사

법률사무소 오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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