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대한변협 부협회장 인터뷰

"변호사는 헌정 질서의 기초... 무거운 마음으로 회무 임해야"

"국민과 정부가 직접 부딪히는 것 막는 완충재 역할도 수행"

"소송은 '제의'... 절차적 정의 실현으로 사회 통합에 기여를"

"디스커버리, 사법 체계에 대한 脫주술화 이끄는 선진 제도"

허허실실(虛虛實實).

소탈한 외모와 달리 눈에는 매서운 총기가 어렸다. 김관기(사시30회)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독특한 사유와 화법으로 유명한 법조계 명물이다. 체험적 지식을 선험적 지혜와 잇는데 천부적 재능을 지녔다. 그는 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본질에 천착한다.

"덴마크 왕자가 빠진 햄릿 공연을 보는 격", "'한국형 제도'에 집착 말고 보잉747처럼 그대로 들여와야 한다" 등 번뜩이는 아포리즘을 인터뷰 도중에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법대를 나왔지만 학부 다닐 때는 사법시험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대학원 시절 학비도 벌 겸 서소문에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서야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생계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김 부협회장은 석사를 마치고 3개월 정도 시험공부에 몰두해 사법시험 1차를 통과한다. 그해 예비역 사관으로 복무한 뒤 이듬해 봄부터 다시 공부해 2차 시험에 합격했다. 수험 생활이 비교적 짧았다.

"지금 변호사 시험이나 직전 사법시험에 비하면, 당시 사법시험 경쟁이 훨씬 덜했던 것 같습니다. 응시자 수도 적었고 여성 수험생도 별로 없었지요."

1991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에는 6년 가량 판사로 근무했다. 그 뒤 고향인 대전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후 김 부협회장은 죽 '로컬 변호사'로 살아왔다. 그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대단한 것은 아니다"고 손사래 쳤지만, 파산절차에서 면책 제도가 적극 활용되기 시작한 시기에는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떨쳤다.

"변호사 생활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게 올바른 방향에서 처신했던 것인지는 자신이 없네요. 이제야 변호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실무를 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은데 어느덧 은퇴할 때가 다가와 덧없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현재 변호사 업계가 직면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로 법조인 양성 체제가 전환됐지만, 변호사 공급을 늘리는 대신 유사직역을 정리해 준다던 정부는 10년 넘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법조인 수급 체계가 마비되든, 법률시장에 혼선이 생기든 모든 부담을 청년 변호사와 소비자들에게 떠넘겨 버린 셈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김 부협회장은 변협도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해 회무 참여를 결심한다.

"변호사 직역의 지속가능성이 문제될 정도로 외부에서 거센 도전이 밀려오는데, 기존의 변협은 대응이 미흡하다고 느꼈습니다. 예컨데 개인파산이나 회생에서 변호사가 아닌 직역이 신청 대리권을 가져가거나, 변호사의 무료봉사를 내용으로 하는 외부 MOU를 의미 없이 남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교류하던 젊은 변호사분들과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이렇게 집행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협회장이라는 직책은 여전히 과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 부협회장은 "변호사 직역은 우리 헌정(憲政) 질서의 기초"라며 "어떤 집행부든 직역을 지키는 것이 변호사뿐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불가결한 요소를 수호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고 회무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사들은 강한 국가(정부)와 대기업이라는 조직에 대항하여 약한 사인을 옹호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국민이 정부와 직접 부딪히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재 역할도 합니다. 변호사가 국민을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한 명 한 명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그가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디스커버리'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 등 주로 영미법(common law) 계수 국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증거개시절차’를 의미한다.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당사자는 소송 상대방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고,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사실관계 발견을 위한 절차를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수행하고, 법원은 이를 감독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민사소송에서 디스커버리 제도는 증거의 구조적 편재를 시정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제조물책임·특허침해소송에서 상대방이 가진 문서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면 분쟁의 실체에 접근하기 쉽습니다. 지금 법원에서는 증인신청과 당사자신문신청을 해도 잘 수용되지 않는 점을 변호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바뀌어도 상당한 변화가 이뤄질 것입니다."

소설가 정을병씨의 작품 '육조지'에는 "경찰은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조진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당사자들은 송사가 길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만일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 사실관계 발견을 당사자가 부담하게 되면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김 부협회장은 "상소가 줄어드는 이익만으로도 디스커버리 제도의 단점은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공개변론에 들어가기 전에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쟁점이 정리되면, 당사자들은 재판 진행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그것에 기반하여 많은 사건이 화해와 조정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항소와 상고하는 사례가 줄어들게 되고, 공개변론에 회부되는 사건들은 비교적 충실하게 심리를 받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디스커버리 제도의 장점은 충분합니다."

그는 디스커버리 제도와 결합된 배심제의 도입 필요성도 언급했다. 여기서 김 부협회장은 사법 시스템을 통한 '절차적 정의' 실현이 가진 제의(祭儀)적 성격에 주목했다. 그는 사법제도 근간에 놓인 다층적인 요소를 세심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적으로 소송은 일종의 '사회적 의식(ritual)'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률에 정해진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면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분쟁이 해결되고 정당한 권리가 행사된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공동체 통합에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배심제 도입도 검토해야 합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제도라면 배심제는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판사 역할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실체적 진실 발견 활동이 어느 범위까지 이뤄져야 하는지, 기업의 영업 비밀은 어느 범위까지 존중되어야 하는지, 각종 절차가 규칙에 맞게 이뤄지는지 법관들이 결정해 줘야 한다"고 강조하며 “법관의 역할과 권한이 막중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1세기에도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이 유효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유독 '한국형'에 집착한다. 물건과 서비스 뿐 아니라 제도도 마찬가지다. 해외 문물이 국내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레 토착화되는 것이 아닌 도입부터 인위적으로 손을 대려는 경향이 강하다.

디스커버리도 마찬가지다. 도입 논의가 무르익자 '한국형 디스커버리'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국내법적 수용 형태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부협회장은 작위적 변형보다는 '직수입'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우리는 외국 문물을 도입하면서 늘 '한국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여기에 회의적입니다. 본고장에서 형성된 제도의 형태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보잉747 여객기나 F-16전투기를 사용하면 우리도 그것을 바로 들여와서 사용하는 것이 낫습니다. 자꾸 '한국형'으로 바꾸려 하면 어디선가 탈이 날 수 있습니다. 물론 도로가 잘 정비되지 않은 국가에서 자동차를 가져다 쓰는 기분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손대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인프라를 개선하는 방향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국회에서는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디스커버리 기능을 일부 수용했다. 개정안에는 △소 제기 전 증거조사 절차 신설 △법원의 제출명령 불응 또는 문서 훼손 시 제재 강화 △문서제출의무자 확대 등 내용이 포함됐다.

김 부협회장은 "이러한 법안이 발의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면서도 "당사자들이 실시하는 '법정 외 신문(Deposition)' 제도가 빠져있는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어 "법정 외 신문 제도가 빠진 것은 마치 덴마크 왕자가 빠진 햄릿 공연을 보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디스커버리 정착을 '가시밭길'로 표현하면서도, 사법 민주화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밝히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소송 절차에 대한 믿음은 민주공화국의 기초입니다. 청탁 수사나 편향적인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려면 과감히 개혁해야 하고, 스스로도 개혁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디스커버리와 배심제도는 사법 체계에서의 탈(脫) 주술화를 이끄는 선진적인 사법제도라고 믿습니다. 이제 첫걸음을 뗀 상황입니다만, 변협도 내부적으로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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