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동선은 집, 사무실, 그리고 법원이 주가 되고, 주동선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하여도 클라이언트의 사무실, 수사기관 정도가 추가되는 것이 통상적인 것 같습니다. 저의 움직임의 궤적 역시 같은 선로의 왕복이 대부분이고, 한정된 범위 내에서 오가다 보니 문득 반복되는 답답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 같아서는 멀리 훌쩍 떠나 동해 바다나 산속에 자리잡은 고요한 산사를 방문하고 싶지만, 한편으로 제출 기한이 다가온 준비서면의 작성이나 미리 잡혀 있는 회의 일정들에 발목이 잡혀 선뜻 떠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의 동요와 갈등이 생겨날 때, 일상을 벗어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가끔 주변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게 됩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접근성이 괜찮고 규모도 클 뿐 아니라 새로운 기획 전시들도 이어져서 주동선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가성비 좋게 들를 수 있는 곳입니다. 2021년 11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하는 ‘사유의 방’을 개관하였다고 하여서 막연히 가봐야겠다 생각하다가, 조금 심란했던 어느 날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정문에서 걸어 들어가는 진입로부터 매력이 있습니다. 일단 박물관 경내로 들어서면 멀리 성벽 같은 박물관 건물이 보이고 건물 앞으로는 거울못이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정문에서부터 박물관 건물 입구로 똑바로 직진을 하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길은 연못을 따라 우회하도록 나있어서 약간의 거리를 돌아가야 하고 길을 올라갈 때 밟게 되는 계단도 그 폭과 높이가 미묘하게 배치되어 있어 평소보다는 느리게 걷게 됩니다. 조금 돌아가면서 또 느리게 걸으면서 연못과 건물 그리고 오른편 너머의 용산가족공원로 향한 시야를 즐기면서 박물관으로 다가가는 느낌이 괜찮습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박물관 건물 중앙의 빈 공간으로 남산이 보이는데 마치 액자 속에 사진을 담아놓은 느낌입니다. 짧기는 하지만 고찰을 찾을 때 대웅전에 이르기 위해 계단을 오른 후 누각에서 경관을 보는 것과 조금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로 생긴 사유의 방은 박물관 2층에 있습니다. 박물관 건물로 들어가 오른편에 있는 에스컬러이터를 타고 한층만 올라가면 방 입구가 있습니다. 밝은색 암석의 벽으로 이루어진 여느 전시실과는 다르게 이곳은 입구부터 검은색 벽에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글이 새겨진 입구에서 왼쪽으로 꺽으면 미디어아트가 설치된 어두운 복도가 있고, 복도의 끝에서 오른쪽으로 화살표를 따라가면 드디어 금동반가사유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금동반가사유상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닌데도 이 전시실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금동반가사유상 두 개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나왔습니다. 붉은 황토벽을 배경으로 유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된 조명과 유리벽 장애물 없이 바로 유물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유물 자체의 아우라 같은 힘이 느껴져 탄성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간과 어우러진 반가사유상이 보이는 순간 잠시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유물 두 점에 관한 설명은 박물관 공식자료에 상세하게 잘 나오는 관계로 비전문가인 제가 학술적인 설명을 상세하게 쓰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몇 가지 저의 감상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전시실은 반가사유상을 360도로 돌아가며 볼 수 있는 구조인데 동선에 따라 양 반가사유상의 얼굴을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인상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표정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고, 사유상의 각 표정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1500여 년의 시간 전에 이런 작품을 구현해낸 분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생겼고, 한편으로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분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였습니다. 두 반가사유상 모두 뛰어나지만 집중을 해서 살펴보다 보면 조금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이 있습니다. 우열이라기 보다는 취향의 차이인데, 나의 선호가 어떠한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빠르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동선과 시간을 즐기고, 곧 서면과 회의가 기다리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은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일상과는 조금 다른 속도의 시간을 느끼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전용원 변호사

법무법인 트리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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