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피고인이 구속된 때 등에 변호인이 없는 때에는 법원은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 또한 법원은 피고인이 빈곤이나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피고인이 청구하면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동법 동조 제2항). 그리고 법원은 피고인의 나이·지능 및 교육 정도 등을 참작하여 권리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피고인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동법 동조 제3항).

몇 주 전 내가 교도소에 수감된 모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어 항소이유서를 작성하기 위해 교도소로 접견을 갔는데 피고인이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항소이유서 작성에 협조하지 않았다. 피고인을 설득해 내가 마음에 들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나는 피고인에게 종이와 필기구를 건네면서 ‘국선변호인의 교체를 요청합니다’라고 쓰고 서명을 하면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하였고 피고인은 위와 같이 쓰고 서명을 하였다.

형사소송규칙 제20조에 의하면 국선변호인이 피고인 또는 피의자로부터 모욕 등을 당하여 신뢰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등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법원 또는 지방법원 판사의 허가를 얻어 사임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법원 또는 지원은 국선변호를 담당할 것으로 예정한 변호사 등을 일괄 등재한 국선변호인 예정자명부를 작성할 수 있고(형사소송규칙 제16조의2 제1항) 국선변호인예정자명부가 작성된 경우 법원 또는 지방법원 판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명부의 기재에 따라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동규칙 동조 제5항).

필자는 국선변호인을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하면서 항소이유서 작성에 협조하지 않는 피고인과 신뢰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필자 말고도 국선변호인예정자명부에 등재된 변호사는 많으니까 법원은 조속한 시일 내에 다른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할 것이었다. 그런데 피고인이 필자에게 “사실은 A 변호사님이 마음에 들어 A 변호사님을 국선변호인으로 하고 싶다”고 하여 내가 “그렇다면 그렇게 자필로 적으시면 법원에 알려 드리지요. 법원에서 그 변호사님을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 줄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라고 했더니 ‘국선변호인으로 A 변호사님을 원합니다’라고 공들여 적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A 변호사님이 그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A 변호사님은 지역에서 형사사건 변론으로 명망이 높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2조 제4항이 보장하고 있는 신체구속을 당한 사람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무죄추정을 받고 있는 피의자·피고인에 대하여 신체구속의 상황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폐해를 제거하고 구속이 그 목적의 한도를 초과하여 이용되거나 작용하지 않게끔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의 ‘변호인의 조력’은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의미한다”고 판시했다(헌법재판소 1992. 1. 28. 91헌마111, 판례집 4, 51 전원재판부).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에는 형사소송절차에서 단순히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피고인이 국선변호인의 실질적인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업무 감독과 절차적 조치를 취할 책무까지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12. 2. 16.자 2009모1044 전원합의체 결정 다수의견). 이처럼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에서 구속 상태에 있는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의 실질적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러한 국선변호인의 실질적인 조력을 받을 권리에 피고인이 선호하는 ‘특정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선정된 국선변호인의 조력 활동에 문제가 없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 주관적인 이유를 들어 퇴짜를 놓고 피고인이 법원에 ‘특정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 달라고 하는 경우에 법원에서 피고인이 원하는 ‘특정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 준다면(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교도소 내에 널리 알려진다면) 일부 피고인들에 의해 국선변호인제도가 악용될 위험이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법원을 구속하게 될 위험도 있다.

물론 법원이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두텁게 보장하고자 피고인이 국선변호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선변호인제도를 운영할 수는 있으나 전술한 것과 같은 위험이 있으므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홍남희 변호사

홍클로버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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