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신문' 휘호 선사한 손용근 변호사 인터뷰

시·서·화에 모두 능통... 법조계 대표적 서예가

"서예는 마음을 닦는 일... 법조인과 궁합 맞아"

법원도서관장 시절 첫 '서예문인화전' 개최도

"변협, 국내 법조인들의 구심점 역할 수행해야"

“정론(正論)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확대하여 헌법과 법치주의를 확립하는데 기여하고, 새 시대에 창조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가치를 품기 소망합니다."

'법조신문' 휘호를 붓글씨로 써서 대한변협에 선사한 손용근(사시 17회)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신문의 영향력이 국민을 위해 바로 쓰이기를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2000년 창간된 '대한변협신문'은 지난해 회원 투표를 통해 제호를 변경하고 법률 전문지로서의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손 변호사는 시(詩)·서(書)·화(畵)에 모두 능한 법조계 대표적인 서예가다. 석계(石溪) 김태균 선생으로부터 글씨를, 직헌(直軒) 허달재 선생으로부터 문인화를 사사받은 흔치 않은 경력을 가졌다.

"수상 경력을 좀 알려 달라"는 질문에 "칠순이 넘어서 상 받은 이력을 말하기 쑥스럽다"고 저어했지만 그는 서화예술협회와 일본의 젠(ZEN, 禪) 전회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여러 작품전에서 초대 작가로 활약했다. 중국 장가계에 있는 한국 미술관은 손 변호사의 '묵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손 변호사는 법률가라는 직업 특성과 서예는 기본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평가했다.

"서예는 마음을 닦는 일입니다. 현실적 갈등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마음을 갈고 닦지 않으면' 본업을 잘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문인화도 마찬가지 입니다. 법조인들의 작품 중에는 수준이 높고 창의성이 돋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글씨가 그 사람의 품격 그 자체라는 측면에서 김병학(사법시험 6회) 전 감사위원의 글씨 책을 일본 서단에 전한 일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일일이 존함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유명 작가에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지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손 변호사는 어린 시절 서당을 다니며 한학을 배운 마지막 세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훈장님으로부터 천자문을 통해 세상 이치를 궁구하는 법을 배웠다.

"천자문은 '천지현황 우주홍황(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는 크고 넓다)'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훈장님이 대낮에 저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와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이 검으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검은 땅을 가리키며 '땅이 누렇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다시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다시 훈장님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시며 '이제 하늘이 어떻냐'고 말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혼란스러웠지만, 이러한 문답을 통해 만물 이치를 스스로 탐구하는 생각법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손 변호사는 또 서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로 수신(修身)을 꼽았다. 글씨 훈련으로 인격을 수양할 수 있다는 취지다. 선비다운 답변이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는 뜻입니다. 서예를 통해 사람의 품격이 저절로 높아지고, 상서롭지 못한 기운들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됩니다. 인내심이 강해지며 세상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붓의 마력은 마약보다 강하고, 종교보다 거룩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랜 인내를 통해 글씨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면 이러한 경지를 맛볼 수 있습니다."

손 변호사는 2006년 법원도서관장 재직 시절 '서예문인화전'을 주최해 주목을 받았다. 법원 차원에서 서예문인화전을 개최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법원은 국민과 늘 가까워야 하고, 그래야 법치주의가 좀 더 확립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행사를 열었다. 당시 유태흥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조인과 작가 등 77명이 총 118점을 출품해 화제가 됐다.

"당시 사람들은 의아함과 놀라움이 절반씩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선 법원 사람들이 서예와 문인화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처음 알게 된 겁니다. 많은 서예 애호가들이 법원 전시장을 방문하게 되면서, 법원이 국민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계기가 되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회원들의 지혜를 모아 시대적 소명을 다해줄 것"을 변협에 당부했다. 재야 법조계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소수의 법조인이 기득권을 누리던 시대가 저물고, '대중법조인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변협도 시대에 따라 그 기능과 사회적 사명이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 국내 법조인의 압도적인 다수가 변호사입니다. 변협은 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변호사, 변호사 단체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제도나 기회를 변협 차원에서 마련해주면 어떨까 합니다. 법치주의에는 포용과 대화, 그리고 수용과 공존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아울러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회의 역할 확대와 국회 입법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인터뷰= 김민주 편집장, 정리=장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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