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있다 보면 다양한 질의를 받는다. 문제는 법무와 무관한 질문도 많다는 점이다. 경험이 충분하신 분들은 가볍게 넘길 수도 있지만, 사내변호사로 첫걸음을 내딛는 분들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변호사님! 계약서 내용을 바꾸려고 하는데 빨간색 글씨랑 밑줄이 사라지지 않네요” 계약서 검토를 마치면 종종 받는 질문이다.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하얀 것은 배경이요 검정 것은 글씨이고, 밑줄은커녕 굵은 글씨조차 없는데. 처음에는 폰트 설정을 잘못한 줄 알고 급하게 파일을 열어봤지만, 이상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도대체 현업에서 말한 빨간색 글씨와 밑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워드의 ‘변경 내용 추적’에 있다. 변경 내용 추적 기능을 활성화하면 추가하는 글자는 빨간색 글씨와 밑줄이 표시되고, 삭제하는 글자는 빨간색 취소선이 생긴다(이하 ‘변경 내역’). 여기에 메모 기능을 이용하여 의견을 작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검토가 끝나면 통상 3개의 파일을 만든다. 변경 내역과 메모가 있는 검토본, 변경 내역은 있지만 메모는 삭제한 수정본, 변경 내역을 모두 적용하고 메모도 삭제한 클린본이 그것이다.

현업에서는 클린본 파일에 내용을 보완하려고 했는데 변경 내용 추적 기능 때문에 글자를 입력하면 빨간색 글씨와 밑줄이 표시된 것이다. 물론 색을 바꾸거나 밑줄 버튼을 무한 클릭해도 그 모습이 바뀌지는 않는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법하다.

심각한 것은 이런 질문이 자주 들어온다는 데 있다. 수화기 너머로 “죄송한데 빨간색 글씨…”까지만 들어도 “포털 검색창에 ‘워드 빨간색 글씨 밑줄’이라고 검색할 생각은 안해보시나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웬만해서는 참고 넘어간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처음에는 변경 내용 추적 기능을 끄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전화로 설명을 하다 보니 현업 담당자가 변경 내용 추적 글씨를 찾지 못하거나 워드 버전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변경 내용 추적 기능을 자세히 설명한 블로그 주소와 포스팅 제목을 메일이나 쪽지로 보내준다. 전화로 씨름하는 것보다 서로가 훨씬 수월하다. 클린본을 저장할 때는 변경 내용 추적 기능을 꺼두는 것도 방법이다.

여기까지 읽고 “굳이 포스팅 제목까지?”라는 의문을 가지셨다면 진정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일부 회사의 경우 보안을 이유로 가상 PC를 사용하거나 외부망 접속을 차단한다. 이때는 블로그 주소를 클릭해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직접 검색해보라는 의미로 굳이 제목까지 알려준 것이다. 과연 이러한 필자의 노력은 빛을 보았을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사내변호사님들께 응원과 격려의 인사를 드린다.

 

 

/고범준 변호사

SK 실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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