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현대화된 대한민국과 대형참사

양복바지에 저고리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80억 명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대한민국은 고작 5000만 명의 인구로 10대 경제대국을 넘보고 있고, IT, 조선,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는 수위를 다투고 있으며, K-POP과 K-CONTENTS는 단연 세계 탑이고, 555m 높이 빌딩이 있는 수도에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할 만큼 감수성이 뛰어나고, 언어를 창제할 만큼 현명하며, 국민이 선하여 호신 장비를 휴대하지 않아도 늦은 시간 외출이 두렵지 않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21세기에 대구지하철화재참사로 192명, 이천냉동창고화재참사로 40명, 세월호침몰참사로 302명, 제천스포츠센터화재참사로 29명, 밀양세종병원화재참사로 40명, 이천물류센터화재참사로 38명이 사망하였고, 가습기살균제참사로 환경부에 피해신고한 건수 중 사망자가 1553명에 달한다. 실로 믿기지 않는 숫자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타워크레인 붕괴 소식이 들리고, 압착사고 추락사고 등 10만 명당 사망자 수가 10이 넘어 산재사망율은 세계 1위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발전에 안전문제를 눈감은 탓에 애꿎은 국민들이 희생되는 형국이다. 내가 “내 가족이 그곳에 있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

유가족은 변화의 원동력이다

안타깝고 슬픈 표현이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함께 접하는 말이 인재(人災)고, 함께 접하는 문장이 동일한 인재가 또 발생했다는 말이다. 참사현장에서 고개 숙인 가해자들도 이들을 감독하는 정부도 하나같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했고, 피해자들은 그 말을 믿고 용서하며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말은 동일한 인재가 또 발생했다는 답답한 말뿐이었다.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충분한 배상을 해 주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일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문제점을 찾아 다시는 동일한 가해가 이루지지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피해자들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지위를 넘어 능동적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하여야 하며 완전한 피해배상을 요구하여야 한다. 배상은 당연한 권리이지 모욕일수는 없다. 그래야 가해자들과 감독자들, 잠재적 가해자들이 긴장하며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야 참사로 피해를 입은 분들의 희생이 덜 억울해 진다. 그래야 남은 자들이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세월호참사와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

오보려니 했다. 서서히 가라앉는 생명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사무쳤다. 같은 마음으로 전국에서 4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세월호법률지원단에 가입해 주셨고, 대한변호사협회도 창립 후 처음으로 무료법률지원을 약속하며 MOU를 체결했다. 한마음으로 아픔과 슬픔을 나누었고, 안산으로 진도로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포괄한 무료법률지원을 위해 변호사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속에 속해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고, 그런 활동을 하면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들 수 있었다.

대한변협 산하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세월호참사 법률지원단 활동처럼 대형재난이 발생할 경우 피해자들에 대한 무료법률지원과 관련된 제도 개선을 제안함으로써 피해자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 보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변호사가 함께 한다는 것 자체로 재난피해자들은 일어설 용기를 얻고 가해자와 감독자의 긴장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위원회에서 6년째 활동 중이다. 세월호참사, 고양버스터미널화재참사, 501오룡호침몰참사, 남양주진접역교량폭발참사, 제천스포츠센터화재참사, 포항지진참사 등에서 법률지원을 했다. 몇몇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변하는 모습을, 정부가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도 느꼈지만 부족한 역량에 죄송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생명존중재난안전특위의 목표는 특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 하고, 관련 제도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참사를 미연에 예방하며, 잠재적 가해자들 스스로가 위험원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재난발생 시 피해자들이 법률지원을 받지 못하여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생명존중재난안전특위는 피해자들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가해자들에게 일침을 가하실 변호사들을 언제나 환영한다.

 

 

/홍지백 변호사

법무법인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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