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일을 시작한 지는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주변으로부터 어쩌다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정우성 친선대사를 만난 적이 있냐는 질문이 두 번째로 많다). 대한변협신문이 부족한 필자에게 지면을 내준 목적도 이에 있으리라 짐작한다.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일을 할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년간 사내변호사 생활을 마치고, 공익법재단에서 5년여간 일하며 가장 집중했던 분야는 난민과 이주민의 인권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지 못하는 소수자를 위해, ‘권리의 언어’로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은 항상 보람이 있었다. 동료들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월요병은 없다”라고 주변에게 자랑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유엔난민기구의 존재감은 난민 지원 활동을 하는 국내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에게 뚜렷하다.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이하 ‘난민 협약’) 등에 따른 ‘난민 협약 규정 적용을 감독할 임무’에 기반하여 유엔난민기구는 국내 난민 보호를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해왔고, 그 과정에서 난민들을 조력하는 현장 단체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밖에서 본 유엔난민기구는 ‘난민 보호’라는 목표 아래(때로는 더디지만) 국내 난민 관련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정책적 개선을 위한 노력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기관이었다.

2012년 국내 난민법 제정 이후 국내 난민 신청자의 숫자는 급증하기 시작하여 코로나 사태 전인 2018년과 2019년에는 각 1만 5000명을 넘겼다. 전통적인 이주민 지원단체들과 기관들은 난민신청 절차를 문의하는 외국인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난민사건을 다룬 경험이 있는 법률사무소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협약의 국내 이행법을 제정한 국가’라는 사실로 인해, 한국이 난민심사제도를 어떻게 고안하고 운영하는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및 국제사회의 관심 대상이다.

급증한 난민신청자들의 수와는 대조적으로 난민지위가 인정된 사람의 숫자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난민인정률은 작년 기준 1%도 되지 못하였고, 현재까지 누적된 난민인정자의 수는 40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때문에 난민신청자에 대한 법조계의 더 많은 관심을 요청하고 싶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난민신청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유지’와 ‘전문적인 조력’이다. 소송단계까지 포함하면 길게는 2~3년 동안 계속되는 난민심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난민신청자들의 입장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생계 유지’가 보장된 제도 설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수의 난민신청자는 다양한 이유로 (본인의 귀책 사유 없이) 합법적으로 일할 자격이 박탈되고, 달리 생계비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생계유지의 보장이 난민신청자에게 전제 조건이라면, ‘난민 지위의 인정’은 그들의 종국적인 목표이다. 결국 난민 지위에 대한 한국 정부의 확인을 받아야 현실적으로 난민으로 국내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난민인정률이 보여주듯이, 난민지위의 인정이란 너무나도 좁은 문이다. 비단 신청단계에서뿐만 아니라, 법원에서도 난민지위를 인정 받기는 하늘에서 별따기에 가깝다. 2018년 기준 서울행정법원에 제기된 1598개의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 중 원고가 승소한 판결은 2건에 불과하다. 출신국의 정황 정보를 본인이 직접 찾아 번역하여 제출하고, 자신의 주장을 한국어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인소송에서 난민신청자가 승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실제로 승소한 사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이들에 대한 변호사의 조력이 절실한 이유이다. 대한변협 난민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 로펌공익네트워크 소속 로펌 변호사들이 프로보노 형태로 난민신청과 소송을 조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대다수의 난민신청자들은 아무런 도움 없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보호 대상자’로 삼는 대상은 비단 난민 인정자와 난민신청자에 그치지 않는다. 난민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국제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식된 무국적자, 국내 실항민, 귀환민도 지난 몇 십년간 점차 유엔난민기구의 보호 임무 테두리 내로 들어왔다. 필자의 업무는 넓은 범주에서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움을 요청하는 난민신청자들을 상담하며 적절한 단체를 소개하여 준다. 난민, 무국적자 등 ‘보호대상자’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와 시민단체와의 협의에 참여한다. 난민협약 등의 해석을 위한 의견서를 작성하고, 더 많은 법조인들이 난민법률지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강연하고 기고한다. 현장에서 헌신하는 활동가와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유엔난민기구 내에서 때로는 새벽에도 상담 전화를 받으며 일하는 동료들도 존경의 대상이다. 정우성 친선대사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월요병은 없다.

 

 

/이탁건 변호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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