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다. 한국 정부는 국내 미얀마인들에 대해 인도적 특별체류조치를 시행한다. 10여 년간 교류해 온 일본변호사들과의 대화 중 일본에는 유사한 조치가 없음을 확인한다. 정부 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고 유사한 해외 법제와 관행을 조사한다. 일본에서는 공론의 장을 준비한다. 일본 여야 국회의원, 변호사와 교수, 미얀마 난민이 함께 한 웨비나에 참석한다. 한국의 조치를 적절히 소개하고 일본의 위상과 그동안의 업적에 비추어 유사한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미얀마인들의 인권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선거운동하듯이 뛰십시오.” 일본 시민사회가 익숙하지 않은 강한 어조로 일본 국회의원들을 압박한다. 며칠 후 참석 국회의원 소속 정당의 입장이 발표되고, 국회의원과 법무부장관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일본 법무부는 결국 한국과 유사한 조치를 공표한다.

사례 둘 : 세계 곳곳에서 탈북자들이 난민신청을 한다. 영국에서 공부했던 한국 교수를 통해, 호주 로펌과 협력관계가 있는 한국 로펌을 통해 영국과 호주의 난민소송에 전문가 의견을 제출해줄 것을 요청 받는다. 탈북자는 남한과 북한의 이중국적자로 남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념 정의상 난민이 아니지 않는가가 쟁점이다. 영국과 호주의 대표적인 탈북자 난민판례에서 국제법과 국내법을 넘나들며 탈북자의 난민의 지위를 정리한 전문가 의견이 언급된다. 계속되는 의견서 요청에 직접 증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영국의 법률구조기금의 지원을 받아 영국법정에 가서 전문가 증언을 한다. 당사자가 아동이었기에 탈북아동이 한국 입국 시부터 겪는 법적, 사회적 문제를 제시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는 영국에 체류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사례 셋 : 이주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다. 그 신고를 하러 갔는데 체류 자격 없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신고서가 반려된다. 그 반려처분의 취소소송이 진행되고, 1심 법원은 미등록이주민은 취업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어 장래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조에 대한 권리가 없다는 취지로 판시한다. 2심부터 결합한다. 유엔인권기구들과 국제노동기구에는 진정을 제기하거나 보고서를 제출해 직접 관련 결정 또는 권고를 얻어낸다. 국제인권조약, 유엔인권기구들, 미주인권재판소, 국제노동기구, 유럽평의회, 미국연방대법원, 스페인 헌법재판소 등의 결정 또는 권고들을 모두 망라하는 서면을 제출한다. 취업자격이 없는 것과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를 이루기 위한 노동3권은 무관하기에 미등록 이주민도 노조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2심과 대법원 판결이 이어진다.

모든 인권은 국제인권, 초국가적 인권이다. 특별한 의미가 아니다. 국제인권은 문제가 되는 인권상황을 제대로 충분히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적인 기준과 공간을 가능한 최대한 활용하자는 방법론이다. 즉, 1) 국내외적 인권의 초국경적, 구조적 취약성에 주목하고, 2) 국내외적 실질적 협력을 구축하고, 3) 국내외적인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고, 4) 국내외적 규범과 기준에 근거하고, 5) 국내외적 사법적·비사법적 틀을 활용하여 6) 국내외적 법제와 관행, 인식 개선, 개별사건 해결을 도모함으로써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항상 부족하고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이러한 접근을 통해 조금이라도 인권의 보호와 확산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변호사로서 2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지지해 준 법조인들, 인권활동가들, 그리고 후원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시작은 소박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국제인권법을 열심히 공부해 제대로 자문할 수 있는 법률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제인권법은 그것이 가지는 법적 구속력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자유와 평등, 평화에 대한 갈망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인류 역사발전의 중요한 산물이다.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 그리고 공감이라는 소중한 공간을 만나 잘 모르겠다는 동료들에게 국제인권이 중요하다고 우기며 자리를 잡았다. 한국과 관련 없는 국제적인 인권문제, 유엔인권기구 등의 활용과 국제인권기준의 국내 적용, 이주민과 난민의 인권, 해외한국기업의 인권문제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좌충우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쌓아왔다.

수많은 순간들이 스쳐간다. 온갖 국제기준과 10여 개국의 법제를 이잡듯이 뒤져 제정 난민법안의 조항 하나하나를 만들었다. 경찰서에 사실상 억류되기도 하고 현지 주민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해외 한국기업의 새로운 인권침해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고 기업의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난민지원 단체나 개인, 관련 연구자가 대부분 망라된 네트워크를 공동으로 설립해 국가 간 단체 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만들기도 했다. 법원과 국회의 국제인권기준 적용을 촉구하는 여러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인권특별위원회에서 국제인권법 아카데미, 일본변호사연합회와의 국제인권법 공동세미나 시리즈, 국제인권 관련 재조, 재야, 학회 법률가 협의체 구성 등을 진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으로 있다. 코로나19로 확장된 온라인 공간 덕분에 저녁에는 공평한 백신접근을 위한 네트워크 등 여러 국제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인권변호사들과 상시적으로 교류한다. 해외용 국제인권 ‘부캐’가 생긴 느낌이다.

수년 전 생각을 정리했던 글귀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제 시작이다. 국제 인권 활동이 필요한 영역은 쉽게 해결되기 힘든 국내 문제이거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타국의 문제 또는 국가 간의 복잡한 관계가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큰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다. 그러나 초국가적 접근은 결국 모든 인권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이에 대한 전문성은 인권 문제에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국제인권변호사의 삶’ 더디고 힘들어 보이지만 나는 이 삶이 참 좋다.”

 

 

/황필규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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