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추석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계절엔 형제간의 우애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추석과 어울리는 그림이 바로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이다. 민화의 한 종류인 효제문자도는 대부분 병풍형식을 따른다. 병풍 아래 빙 둘러앉아 두런두런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는 풍경은 코로나와 맞물려 더욱 어려운 모습이 되었다.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가운데, 끝의 두자인 염치(廉恥: 체면을 차릴 줄 아는 부끄러운 마음)는 과거보다 오늘날 더 큰 교훈을 준다. 예로부터 염치는 지식인들의 주요 덕목이었지만, 최근엔 염치불고(廉恥不顧), 몰염치(沒廉恥), 파렴치(破廉恥)처럼 정치인·공직자들의 검증에서 피해갈 수 없는 부정적인 단어로 읽힌다. 염치를 그린 문자도는 항시 유념해야 할 청렴의 태도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시각화 한 것이다.

△청렴을 상징하는 염(廉)자 문자도
△청렴을 상징하는 염(廉)자 문자도

 

염치를 나타내는 문자도
염치를 나타내는 문자도

문자도의 고사(故事)를 살펴보자. ‘효(孝)’자에는 보통 잉어와 대나무 도상이 등장한다. 효자로 이름난 옛 중국의 맹종(孟宗)과 왕상(王祥)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맹종은 겨울철에 죽순을 키워 어머니를 봉양한 것으로 유명하며 왕상은 계모를 부양하기 위해 얼음을 깨고 잉어를 낚았다고 전한다. ‘제(悌)’자에는 할미새, 집비둘기, 산앵두 도상이 등장하는데, 형제의 우애와 정을 읊은 ‘시경’의 소재들이다. ‘염(廉)’자에는 수천 리를 날다가 배가 고파도 조 따위는 먹지 않는다는 봉황이 등장하여 청렴을 노래한다. ‘치(恥)’자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고사가 새겨지는데, 이들은 은(殷)나라의 제후 고죽군(孤竹君)의 큰아들과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둘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양산에 들어갔는데, 자신의 욕심보다 부모의 뜻을 효심으로 받든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효제문자도 / 유교문자도 (제공 : 현대화랑)
전형적인 효제문자도 / 유교문자도 (제공 : 현대화랑)

효제문자도의 향연이 궁금하다면, 삼청동 현대화랑의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9월 14일 ~ 10월 31일)’를 찾아보길 권장한다. 문자도 수작들과 더불어 박방영·손동현·신제현의 현대미술가들의 새로운 형식도 만날 수 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유쾌한 문자그림들은 탁월한 솜씨와 고졸한 미감을 넘나들면서 그린 이의 개성과 삶의 방식들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글자 안에 물결문양이 있는 제주문자도
글자 안에 물결문양이 있는 제주문자도

문자도는 지역마다 그 형식이 독특한데, 제주문자도는 실제 ‘바다+섬+하늘’을 2단 혹은 3단 형식으로 표현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다가오는 추석명절엔 문자도에 담긴 긍정적인 교훈을 되새기면서, 부모와 형제 간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문의 02-2287-3500)

화조를 강조한 효제문자도
화조를 강조한 효제문자도

 

/안현정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예술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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