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변호사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듣고 있으면 남의 일 같지 않다. 특히, 언뜻 봐도 중요한 계약서를 던져주면서 “이거 간단한 거니깐 퀵하게 봐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다.

2005년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제목이 떠오르더라도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무조건 “NO”라고 대답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현업이 먼저 공을 던졌더라도, 부드럽게 공을 되돌려주면서 검토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첫째, 질문을 하자. 중요한 계약이라면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계약서를 읽고 질문 리스트를 정리해서 현업에 보내자. 계약체결 경위를 알 수 있는 보고서나 품의서를 함께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일 도장을 안 찍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질문에 대한 회신은 며칠 후에나 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 급하고 중요한 건이라면 즉각적인 피드백을 위해 현업 담당자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검토요청만 해놓고 퇴근해버린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질 수도 있으니 질문은 가급적 메일을 이용하자.

둘째, 범위를 좁히자. ‘모든’ 법적 문제를 검토해달라는 요청은 비일비재하다. 사실 현업에서 걱정하는 이슈가 있지만, 습관적으로 모든 법적 문제라고 말할 때가 많다. 법무팀은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니 현업에서 무엇을 리스크라고 생각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주로 전화를 이용한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면서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데 제가 지금 실장님 지시로 중요하게 검토하고 있는 건이 있어서요. 요청해주신 건은 다음 주까지 의견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마지막에 덧붙인다. 십중팔구 그래도 상관없다고 한다. 이슈를 좁히고, 기한도 확보하고. 회사에서 안 되는 것은 없다.

셋째, 의사결정을 요청하자. 계약서에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수용불가 규정을 따로 모아서 왜 해당 규정은 받아들일 수 없는지 간단하게 의견을 적어 현업에 수용 여부 의견을 달라고 메일을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법무팀에서 결정해달라는 회신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법무팀은 의사결정을 하는 부서가 아니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견을 주는 부서이다. 즉, 의사결정은 현업의 몫이다. 상대방 의견을 따를 경우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다시 설명하고, 리스크 있는 규정의 반영 여부는 현업이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언급해 줄 필요가 있다.

경험상 위와 같은 방법을 활용하면 충분한 검토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요한 계약은 시간을 투자해서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회사의 리스크를 예방하는 것이 사내변호사의 역할이다. 현업에서 빨리 진행해야 하는 건이라고 재촉해서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는 항변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간단한 거니 퀵하게 검토해달라”는 말에 감정이 상하거나 흔들리지 말자.

 

 

/고범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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