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빈 변호사
오세빈 변호사

나는 송종의 전 검사를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 검찰 재직시절 ‘송도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분, 검찰수사관으로 근무하던 친구로부터 공사 구분이 뚜렷하고 수사실무에 해박하시며, 일에는 한없이 엄격하지만 소속직원들에게는 인정이 많으신 분 정도의 평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취미가 나무 가꾸기로 주말마다 논산에 있는 산골에 내려가 송충이를 잡고 지낸다는 등.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동료 변호사로부터 그분의 저서를 구해 읽으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였다.

송종의 검사의 이력을 보니 1970년경에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현 논산지청) 검사로 근무한 경력이 확인되었다. 아마 그 무렵 논산의 오지인 논산군 양촌면에 임야를 장만하여 나무심기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후 1996년까지 대전·서울지검 검사장, 대검 중수부장, 대검차장 등의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다가 사직하고, 1998년도에는 법제처장관으로 봉직하다가 퇴직한 후에는 홍콩 역술가의 사주풀이대로 ‘수궁지처 좌간운생(水窮之處 坐看雲生, 물길이 끝나는 곳에서 피어나는 구름을 본다)’의 생을 찾아 논산시 양촌면으로 낙향하게 된다.

여기서 유유자적하며 한시나 읊고 옥루청풍(玉樓淸風, 아름다운 누각에 빼어난 경치)의 여생을 보냈다면 이는 단지 필부의 노년으로서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십년을 가꾸어 온 밤나무에서 밤을 수확하고, 논산 지역에 특화된 딸기의 재배와 가공에 착안하여 ‘양촌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농산물 가공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펼치게 된다. 20여 년 동안을 밤 딸기 등 농산품들을 가공하고, 딸기잼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현재 5000여 평의 부지에 창고 및 농산식품 가공시설과 60여 명의 근무직원을 고용하는 대사업가로 변신함으로써 농촌경제에 크게 이바지하는 공덕을 쌓아올리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업에서 올린 수익금으로 2014년에 공익법인인 ‘천고법치문화재단’을 설립하여 개인의 사재로 연간 수천만 원의 상금을 법치문화의 창달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시상하고 있는데, 서울행정법원, 한국법제연구원, 감사원 방산비리특별감사단 등이 ‘천고법치문화상’의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어있다. 1941년생으로 이제 80세를 맞는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명유아작 복자기구(命有我作 福自己求, 운명은 스스로 짓고 복은 자신에게서 구한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자신을 천목거사(天目居士)로 지칭하는 것처럼 하늘의 눈으로 인생사를 관조하는 여유로운 모습에서 봉공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는 프로보노(Pro Bono)의 전형을 보게 된다. 자허원군의 성유심문에 나오는 ‘맑고 겸손하면 복이 생기며 몸을 낮추면 덕이 생긴다’는 글귀를 새겨보며 법조인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오세빈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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