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대부분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는 로스쿨 교수님께 ‘○○○변호사(님)’의 아닌 ‘○변’으로 약칭하는 것은 변호사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공익법무관 시절 아무도 저를 변호사로 부르지 않았으나, 제가 누군지 몰랐던 검찰 직원분이 저를 ‘주임(님)‘으로 부르자 다른 검사님이 이를 보고 꾸중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방청 전입 세무직 공무원은 세무조사의 조사반장에서 따온 ‘반장(님)’으로 호칭하는데, 제가 처음 국세청에 입사할 당시 저와 같은 성을 가진 직원분이 있으셨고, 부득이 둘을 구분하여 부르기 위하여 그 직원분은 고반장님, 저는 고변호사님으로 호칭하였습니다. 그 직원분이 본청으로 발령 나고도 현재까지 전 고변호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를 재민 씨, 고반장님, 고변호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물론 위에서 말한 대로 고변(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를 부르는 많은 직원분은 많은 이름으로 저를 부릅니다.

저는 법정에서 “소송수행자 고재민 출석하였습니다”라고만 하는데, 몇 년 전 “수행자는 혹시 변호사 자격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판사님도 계셨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법조인처럼 서면을 잘 써서 물어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서면에 ‘공무원은 적법행위가 추정된다’라는 판례를 넣어서 물어본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른 사내변호사님들도 그렇듯 저 또한 ‘변호사 자격이 있는 직원’보다는 ‘변호사의 대우를 받는 직원’에 가까운 역할입니다. 저는 다른 직원분들과 똑같이 마감이 정해진 행정업무를 보다가도 부서 특성상 사건 관련해서 세법 외의 법리가 나오면 제가 변호사 역할을 하면서 정체성을 발휘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저를 ‘변호사 자격이 있는 직원’만큼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면서 동시에 ‘변호사’의 역할을 모두 해주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변호사 같은 책임을 지는 직원’이라고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기도 합니다.

변호사가 주(主)가 되지 않는 조직에서는 좋게든 나쁘게든 소수면서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 그대로 좋은 점 나쁜 점이 모두 있다 보니, 행동도 조심스러워지고 갈피를 잡기도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좋은 직원분들을 만나 잘 적응하였지만, 다양한 조직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조직이 변호사를 어떻게 대하도록 하여야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것 같습니다.

고심 끝에 결국 저는 먼저 다가가서 이름을 불러주는 변호사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직원에 불과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먼저 부르면 그는 나를 의지하는 의뢰인이 됩니다. 나의 기대와 역할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면, 그에게로 가서 나도 변호사가 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잊히지 않는 변호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를 어떻게 부르더라도 저는 국세청 직원이면서 동시에 국세청 변호사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저는 당신의 무엇인가요?

 

 

/고재민 변호사

인천지방국세청 징세송무국 송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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