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판결문 데이터베이스화 및 그 이용에 관한 규제 방안 세미나 개최해

개인정보 유출, 영리적 목적을 위한 유사 법률서비스 조장 등 문제점 지적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나 영업비밀 유출, 영리 목적 악용 등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해결책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확대되는 판결서 공개에 법조계가 우려를 표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지난 21일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판결문 데이터베이스화 및 그 이용에 관한 규제 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점진적으로 판결문 공개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미리 문제점을 파악해 규제 등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종엽 협회장은 “공개된 판결문을 이용한 데이터베이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개인정보나 영업비밀 등이 영리 목적으로 악용되지 않고 사법제도가 자본에 잠식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에서는 2019년부터 판결서 인터넷 통합검색·열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범위는 2013년부터 확정된 형사사건과 2015년부터 확정된 민사사건이다. 서비스는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공개되는 판결문은 비실명화 처리된 사본이다. 지난해 12월 민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2023년부터는 미확정 민사판결서도 인터넷으로 검색·열람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최승재 변협 법제연구원 원장은 “판결문 공개는 ‘선’이고 비공개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판결문을 비공개하자는 입장을 시대 방향성을 못 읽는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판결문 공개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결문 공개 시 예상되는 문제로 가장 많이 꼽히는 부분은 ‘개인정보 유출’이다. 판결문에 당사자 간 내밀한 정보가 현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형준 변협 부협회장은 “판결문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혼 관련 사실 관계나 기업의 영업 비밀 등을 판결문 공개 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아무런 내용과 대책,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현행 법령에 이미 판결문 공개에 대한 여러 제약이 존재하는데도 판결문 공개를 추진하는 건 성급하다”고 비판했다.

가사소송법 제10조는 가정법원에서 처리 중이거나 처리한 사건을 보도할 수 없는 내용을,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 제4조는 형사사건은 규정 등에 따라 공개가 허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내용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개된 판결문을 활용한 ‘법률 인공지능’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신인규 변협 AI 법률서비스 등에 대한 대응 TF 위원은 “이미 일개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구축한 판결문 데이터베이스로 형량예측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영리 목적으로 법률사무를 취급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공적 문서를 사용해서 얻은 자본을 바탕으로 변호사를 지배·종속하는 미래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원 서울회 법제이사도 “리걸테크 업체들이 법률문서 작성 서비스, 소송 결과 예측 서비스 등을 독립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직·간접적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리걸테크 발전을 위해 주식회사가 법률사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료 기술 발전을 위해 의료기기제조업체가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플로어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영훈 변협 부협회장은 “외견상 법률플랫폼 등에서 제공하는 형량 예측 서비스 등이 무료일지 모르지만 트래픽에 따라 몸값이 올라가는 사업 성격상 유료나 다름 없다”면서 “영리를 위해 유사 법률서비스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안으로는 판결문 공개 범위와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진우 변협 정책이사는 “일부 재판을 제외하고는 현재도 재판을 방청할 수 있다”면서 “재판 시작 전부터 당사자에게 동의를 받는 경우만 판결문을 공개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신인규 위원도 “판결문 비실명화를 전제로, 판결문에 관계되는 모든 당사자 동의를 받은 판결문에 한해서만 공개해야 한다”면서 “이와 더불어 판결문 데이터베이스 이용은 소송 등 관련 업무 수행에 도움을 줄 목적과 학문적 연구 목적으로만 이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협은 판결문 공개 확대가 지닌 양면성을 확인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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