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은행 지점 전속법무사다. A는 지점 의뢰에 따라 채권최고액 50억 원짜리 공장근저당권설정등기를 등기국에 접수했다. 그런데 등기국에서 설정계약서의 채무자 간인이 흐리다며 보정을 냈다. A는 15쪽짜리 공장저당계약서를 살펴보고서 흐릿한 간인 몇 군데를 추렸다. 채무자가 연락을 받지 않아 애가 탄 A는 그의 집까지 찾아갔으나 문전박대 당했다. 50억 원짜리 설정등기가 소식이 없으니 지점은 난리가 났다.

#상속전문변호사 B는 상속등기의뢰를 받고 토지 상속등기를 접수했다. 그런데 등기소에서 피상속인의 인적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보정을 냈다. B는 등기관과 통화를 하다가 그만 언성을 높였고, 의뢰인에게는 등기관이 요청하는 서류를 말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B는 이래저래 골치 아프게 되었다는 생각에 등기신청을 취하한 다음 자료를 더 모으고 의견서까지 써서 상속등기를 다시 신청했다. 그런데 새로 신청한 건도 같은 등기관에 배당이 되었고, 담당 등기관은 B의 사무실로 전화해 ‘변호사님, 의견서를 봐도 이해가 안 되니 각하처분을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A와 B의 운명은? A는 무조건 등기관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반면 B는 등기관의 각하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선택할 수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1. 현행 등기법의 문제점

현행법상 등기관의 처분에 대한 불복으로는 이의신청만 가능하다. 그런데 부동산등기법(제104조)과 상업등기법(제86조)은 공히 이의신청에 집행정지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등기신청인이 등기관의 각하처분에 불복하더라도 당장 각하의 효력을 막을 방법이 없다.

사례의 A가 각하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해서 인용을 받은들 근저당권설정등기의 효력은 인용결정의 취지에 따른 등기가 실행된 때에 비로소 생긴다. 그렇기에 A는 아무리 억울해도 등기관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등기가 각하되면 은행은 담보 없이 대출해준 사고에 직면하고, 은행은 A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반면 상속등기는 성질상 일자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B는 의뢰인이 양해해주면 이의신청을 하고서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다. 다만 부동산등기 중 일자 제한이 없는 유형은 좀체 없다.

2. 집행정지제도의 당위

재판에 있어서는 1심의 판결이 있어도 집행정지신청을 통해 집행을 막을 수 있고, 경매절차에서 사법보좌관이 하는 배당에 대하여도 배당이의 소로써 배당을 정지시킬 수 있다. 법관의 판단도 집행정지의 대상임을 생각하면 등기관의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제도를 두지 않음은 많이 어색하다. 등기관의 처분이 행정처분의 일종인 점도 집행정지제도의 당위를 보강한다.

등기관이 부당한 처분을 해도 이의신청을 쉽사리 택할 수 없으니 신청(대리)인은 무리한 보정도 다 해내야 한다. 아니면 등기관에게 읍소를 하거나, 심지어 부적절한 이익을 건네면서까지 사태를 해결한다.

2016~2019년 기준 전체 등기사건수 대비 이의사건 비율은 0.0035%, 등기관의 각하처분 대비 이의신청 비율은 1.43%이다. 지금 법제에서는 이의신청 사례가 드물 수밖에 없다. 판례의 집적이 없으니 등기법리의 발전도 난망하다.

집행정지제도가 도입되면 이의신청을 해도 순위를 보전받으니 이의신청이 활성화될 수 있다. 사례가 쌓이면 법원, 등기소, 신청대리인, 국민의 등기사무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며, 등기관 입장에서도 결정에 참고할 자료가 생성되므로 등기소 업무의 통일, 편리가 도모될 수 있다. 등기법학도 발전할 것이고, 이로 인해 법학계 및 법률서비스 분야에 새로운 영역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집행정지제도는 이익형량 측면에서도 타당하다. 집행정지 원칙을 택할 때 발생할 부작용은 ‘심리기간 동안 신청등기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발생할 이해관계인 및 제3자의 불편’일 것인데, 이는 집행부정지를 택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인 ‘부당한 각하처분 후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기 전에 다른 등기가 기입됨으로써 선행 등기권리자가 잃게 되는 권리’보다 열위에 있다.

집행정지제도가 있다면 A는 채무자를 찾아가 기다리는 대신, 등기관의 각하결정에 대한 집행정지를 받고 법원의 취소결정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박시형 변호사

명지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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