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일반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놀랍게도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은 평범했다. 계기도 ‘거짓말’로 사소했다. 실로 엄청난 범죄도 그 시초는 정말 사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은 나에게 양형을 줄여줄 수 없냐고 했다. 1심에서 양형이 그렇게 높게 나온 것 같지 않던데. 공판 첫 기일. 피해자 부모의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나를 바라보는 재판장의 표정에서 ‘냉소’를 느낄 수 있었다. 피고인의 친척 등이 마련해서 제출한 피해자 부모의 처벌불원서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재판부가 내비친 심증이었다. 법정에 불러 증인 신문과정을 거치라고 했다.

두 번째 기일. 피해자 부모 증인신문 과정이 마쳐질 즈음에도 여전히 재판부에선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잘못하면 항소기각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난 결심을 했다.

“피고인은! 본인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지요!” 우렁차게 그러나 안타까운 목소리로 피고인 신문을 시작했다. 세 분의 판사님, 검사님, 방청객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변호인(?)” 재판장의 표정에서 ‘지금 뭐하는 거야?’라는 물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이구나’ 최후 변론 때 오페라 가수인 마냥 처벌불원서와 탄원서를 삼세번 강조를 했다. 하지만 재판장의 표정은 변하려고 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끝날 것만 같았다.

“절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피고인은 최후 진술 때 떨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던 방청석에서 탄식이 뒤섞인 동요가 일어나 법정 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음 …” 재판장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제가 … 제가 그런 짓을!” 피고인의 절규가 끝나자 방청석에서 엄청난 열기와 동요가 법정 내를 뒤덮었다.

변호사로서 나는 그 날을 기점으로 하여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뭐가 달라지겠어? 판사님이 알아서 판단해주시겠지’라는 허무주의와 의심의 생각들에 귀를 기울였다면 내 안의 유리벽을 깨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날 이후 난 변호사로서의 업무 영역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김한가희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솔론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