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절차법 제21조 제1항은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 그 내용을 사전에 통지하도록 하되, 동조 제4항과 제5항에서 이를 생략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하고 있다. 이에 행정절차법 시행령 제13조 제2호는 ‘법원의 재판 또는 준사법적 절차를 거치는 행정기관의 결정 등에 따라 처분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돼 처분에 따른 의견청취가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사전 통지 생략사유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행정청에서는 처분 대상자가 형사재판에서 의무위반의 범죄사실에 관하여 유죄를 선고받아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위 조항에 따라 의견청취를 생략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였다.

대법원은 행정절차법 시행령 제13조 제2호에서 정한 경우라 함은, 법원의 재판 등에 따라 처분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되면 행정청이 반드시 ‘일정한 처분’을 ‘해야 하는’ 경우 등 의견청취가 행정청의 처분 여부나 그 수위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였다(2020. 7. 23. 선고 2017두66602 판결). 이에 처분의 전제가 되는 일부 사실만 증명된 경우이거나 의견청취에 따라 행정청의 처분 여부나 처분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면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즉 기속행위가 아닌 재량행위에서는 설령 처분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재판 등을 통해 증명된 경우라 하더라도 행정청이 의견청취를 하여 그 내용을 들어본 후 처분 여부를 결정하거나 적어도 처분의 내용에 있어 경중을 달리할 수 있으므로 사전 통지를 생략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입장에서 폐기물의 적정 처리를 명하는 처분을 받은 원고가 그 이전에 이미 1차, 2차 조치명령을 받았고, 심지어 형사재판에서 위 각 조치명령 불이행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죄판결 확정 이후부터 처분 시까지 시간적 간격이 있어 사정변경의 여지가 있으며 유죄판결만으로 처분사유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 사건 처분 당시 원고가 폐기물을 적정하게 처리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치 아니하다고 인정할만한 다른 사정이 실제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법원은 재량행위에 있어서는 행정청이 반드시 일정한 처분을 해야 하는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사전 통지 및 의견청취를 거쳤어야 함을 판시한 것이다. 이 사안에서는 다만 이러한 잘못이 결과적으로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고 보았으나, 대법원이 행정청으로서는 법원의 재판에 따라 처분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경우에 해당하여 의견청취를 생략하여도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사건에서 이 같은 판시를 함으로써 행정처분 과정에서 국민의 권익을 더욱 보호하고자 한 것은 의미가 있다.

 

 

/송도인 행정법 전문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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