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나서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답답한 응어리에 막혀 읽는 내내 힘에 겨웠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그랬다. 그가 살아온 삶이 그랬다. 자꾸 눈물이 나왔고, 그래서 자꾸 읽기를 멈추고 숨을 가다듬곤 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 라고’ 맺는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단단히 조였던 긴장의 끈이 ‘팽’하고 끊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신경숙 작가의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의 읽기를 마쳤다.

식민지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 부모를 여의고, 전쟁과 가난을 살아낸 한 사내의 이야기이다. 네 아들과 딸 둘을 키워낸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평생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온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이야기다. 그가 겪었던 일들은 인생사이고, 가족사이고 대한민국 현대사이기도 하다. 우리 곁 아버지들의 흔하디흔한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더 가슴 시린 고통의 나이테이기도 하다. 식구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인생마저도 포기해야 했던 애잔한 삶의 서사이다.

아버지의 삶 속에도 어린 시절의 꿈과 청춘의 낭만이 있었음을 자식들은 잘 알지 못한다. 딸은 아버지가 남겨놓은 비밀과 같은 편지 속에서 그도 어디론가 일탈하고 싶은 청년이었고, 이룰 수 없는 연정을 나눴던 사내였음을 깨닫게 된다. 자식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상대적 존재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존재로 얼마나 살아가고 싶었는지를 보게 된다.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라고 되뇌는 아버지의 모습은 숭고하지만 가엽기도 하다. 그 속에서 현실의 내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났는지 모를 일이다.

작품 말미에 아버지가 유언처럼 가족에게 남기는 말이 가슴에 맴돈다. 첫째에게 외투와 나무궤짝 편지를 남긴다. 둘째에게 북과 북채와 전축을, 셋째에게는 시계와 술 한 병을 남긴다. 넷째에게 헛간 자전거를, 다섯째에게는 선글라스를 남긴다. 막내에게 우사를 남기고 아내에게는 통장을 남긴다. 하찮다면 하찮아 보이는 모든 것들이다. 모아보니 아버지 인생 전체를 표현하는 오브제들이다.

작가는 13년 전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을 냈다. 이후 아버지에 대한 작품을 쓸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마음을 달리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고마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문득, 아버지에게 문안 인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팬데믹이 길어지며 지쳐가는 요즘이다. 더 큰 질고의 삶을 이겨내온 아버지들의 삶의 서사가 희망으로 다가온다. 곧 가정의 달 5월이 온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존경을 보내며, 일독을 권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창비)

『가시고기』

(조창인, 신지)

 

/장훈 한국수자원공사 홍보실장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