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관련 기획을 준비하며 되새기게 된 사실이 있다. 중요한 변화는 법이 바뀌는 시점에 시작되지만, 결코 그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2021년 1월 1일자로 대한민국 형법은 더 이상 낙태를 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임신을 중단하는 일은 어렵고, 은밀하게, 온전히 개인이 해치워야 할 문제다.

“저도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요” 자문을 구하기 위해 찾아간 의료인 출신 변호사 역시 바쁜 일정 가운데 답했다. 의사법 개정, 감염병 법안, 의료소송 분쟁 등 관심을 가질 주제는 넘쳤고 헌재 판결 이후 낙태죄 관련 논의는 관심 사안에서 밀려나있었다. 국회는 낙태죄를 없애는 게 맞는지부터 합의되지 않아, 이번 회기에도 구체적인 논의는 진행되기 어려워 보인다.

“사실 지금 너무 많은 관심이 필요한데, 아 낙태죄가 폐지됐으니까 다 끝났구나? 이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서” 1970년대 낙태죄를 둘러싼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그린 연극 ‘344명의 썅년들’ 연출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안전한 임신 중단’을 위한 여정은 처벌법이 사라진 뒤 40년이 지났건만 아직 ‘진행형’이다.

“법이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거든요. 다른 의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기본 의료 서비스에 기존에 있던 거에 포함을 시키면 되는 건데 … ” 산부인과 전문의는 마치 근거법이 있어야만 무언가 시작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나 역시 “국회가 일을 미적거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 빠져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기획 기사의 구성을 고민하면서 49억km를 날아 명왕성에 도착한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에 대한 책을 읽었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은 30년 전에 시작됐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구상한 이들은 예산을 놓고 지난한 싸움을 이어나가며 셀 수 없이 많은 오류와 궤적을 계산하고 또 계산하며 상상도 하지 못한 새로운 우주를 발견했다.

그러는 사이 국내 한 제약사가 임신 중단 약물 수입을 발표했다. 이 약을 복용하면 수술 없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다. 식약처는 상반기 중 판매승인을 내려줄 계획이라고 한다. 변화는 모든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법은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허락 받고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과거의 투쟁들을 기억합니다. 금지된 것을 넘어 요구합니다. 2021년 자유로운 임신중단과 재생산권을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 연극 ‘344명의 썅년들’ 극중 대사 인용 -

 

 

/민지숙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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