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가득한 희망찬 새날이 기다려지는 구정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거울을 보노라면, 내 얼굴 어딘가 그리운 부모님의 흔적이 이곳저곳 배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그리는 작가들의 경우, 그 흔적은 얼굴뿐 아니라 작품 속 어딘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한국 추상회화를 연 작가들 중 인상 깊은 ‘자화상’을 남긴 청화(靑華) 하인두(1930~1989)는 컬러밴드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하태임 작가의 부친이다. 북·미정상회담장소인 싱가포르 카펠라호텔 로비에 설치되어 세계 언론이 주목한 바 있는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 속에도 아련하면서도 따스한 부친을 향한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하인두, 자화상, 19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인두, 자화상, 19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태임의 자화상, 구토, 81x117cm, 1993 (작가소장)
하태임의 자화상, 구토, 81x117cm, 1993 (작가소장)

하인두는 해방 직후에 설립된 서울대출신 1세대 작가로,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동인이자, 한국적 앵포르멜(Informel) 양식을 주도한 핵심 멤버였다. 전통 오방색을 자유추상의 형태로 녹여낸 에너지 넘치는 작품들은 한국추상의 원형성을 내재함과 동시에 한국 현대화의 고뇌를 예술가의 더듬이로 녹여냈다고 평가된다. 그 가운데 웅크린 초기의 ‘자화상(1957)’은 삶에 대한 진지한 의지와 예술가로서의 불꽃을 덩어리진 근육과 다색의 기하학적 볼륨으로 구현하여 한국 근현대 자화상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유동적인 선의 확산과 심연의 불꽃 같은 형상들은 서구와는 다른 동양정신의 표출이자, 하태임 작가로 이어지는 한국적 창작실험의 전범이라고 평할 만하다.

하지만 어린 딸과 함께 떠나기로 한 파리행 티켓은 하인두의 이른 타계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혼자 유학길에 오른 대가의 딸, 하태임이 내놓은 23세 첫개인전의 형상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하인두가 대학 졸업 후 내놓았던 ‘자화상’을 빼다 박은, 웅크리며 세상을 향해 구토하는 형상이었다. 그리고 오늘, 40대 후반의 작가는 자유로운 형상의 컬러밴드 내면에 컬러를 올린다. 밝게 치유되는 힐링의 메시지, 화사한 색감들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생채기보단 희망을 향한 질문으로 채워 넣는다. 그린다는 행위는 작가에겐 어쩌면 생을 확인하는 치열한 과정이자 자신의 근원을 되찾아가는 여정일지 모르겠다. 하태임의 컬러밴드는 형상이 아니라 기억이고 가능성이다. 수없이 그어 내린 붓질은 그리운 아버지를 향한 되새김질이자 작가의 오늘을 기록한 자화상인 셈이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자. 우리 안에 담긴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과 간절한 바람이 오늘의 자화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태임, Un Passage, 2020
하태임, Un Passage, 2020

 

북미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을 장식한 '하태임'의 컬러밴드
북미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을 장식한 '하태임'의 컬러밴드
북미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을 장식한 '하태임'의 컬러밴드
북미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을 장식한 '하태임'의 컬러밴드

 

 

/안현정 성균관대박물관 큐레이터

예술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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