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이 나오면 주저 없이 드는 책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다. 이미 책꽂이 몇 칸을 채우고 있음에도, 내가 놓친 작품이 없나 찾기도 한다. ‘일인칭 단수’는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나오는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이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들어서, 한 호흡으로 읽어내려갔다. 하루키만의 문장과 문체, 시선과 생각이 옛 친구를 만나듯 설레게 한다.

이번 소설집에는 8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모든 글은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의 글은 늘 보는 일상의 풍경을 담는다.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힘은 하루키만의 디테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사물 하나, 풍경 하나를 그려 낼 때도 작은 부분 하나하나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마치 실사 그림을 보는 것처럼,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장면이나 사물을 보는 듯한 기분을 만들고, 현장에 함께 있는 느낌을 받는다. 한마디로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수비연습을 하는 선수들의 아직 얼룩 한 점 없는 유니폼, 눈을 찌르는 순백색의 볼, 수비연습용 배트가 한가운데로 볼을 쳐내는 행복한 소리, 맥주 판매원의 야무진 외침, 경기 직전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스코어보드…’ 단편,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의 이 문단을 읽으면 독자는 마치 일본의 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함께 보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클래식, 재즈, 해비메탈, 비틀즈를 넘나드는 음악에 대한 해박함으로 묘사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문장이 아닌 음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하루키의 글이 가진 또 다른 힘은 바로 익숙함 속 낯설음이다.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새로움은 이질적이고 뭔가 억지스럽기보다는 너무나도 있을 법해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기울여서 이야기를 듣는 아이가 되게 하곤 한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어느새 보채는 나를 보게 된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을 둘러앉혀 이야기해주는 이야기꾼 하루키를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의 이야기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자꾸 듣고 싶어질 것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요즘이다. 사람과의 이야기가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때 가볍게 들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짧은 단편 소설이지만 생각의 깊이만큼은 얕지 않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크림’ 중).” 우리가 겪는 오늘의 어려움도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지나가리라 믿는다. 설 연휴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나카무라 구니오, 밀리언 서재)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장훈 한국수자원공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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