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나훈아 씨는 가수를 “꿈을 파는 사람”이라 정의내렸다. 가슴에 있던 꿈이 고갈된 것 같아 10여년 동안 방랑생활을 했다고 고백했다.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래’라고 반문하는 그이지만, 나훈아씨에게 꿈이 사라졌다면 테스형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꿈을 세 가지로 풀이한다. 하나,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둘,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셋,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나훈아 씨가 말하는 꿈은 적어도 하나나 셋은 아닌 듯하다.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꿈의 정의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최근 달아오르는 주식시장도 희망과 이상이 현실에 투영된 모습이다. 수많은 주린이(주식 초보를 이르는 말)는 오늘도 부푼 가슴을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버블 경고도 있지만, 그 꿈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앞선다.

‘꿈과 변호사’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왜 꺼냈을까? 다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본다. 변호사는 “법률에 규정된 자격을 가지고 소송 당사자나 관계인의 의뢰 또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피고나 원고를 변론하며 그 밖의 법률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풀이한다. 변호사와 혼용되는 변호인은 어떨까. “형사 소송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보조자로서 변호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적어놨다. 너무나 드라이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꿈과의 관계를 찾자니 머릿 속에서 직관의 영역보다 사고(思考)의 공간을 먼저 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변호사가 만나는 손님들 중 상당수는 세파에 깎아졌거나 무언가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훈아씨가 테스형에게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한탄했다면,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변호사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질문한다. 얼굴은 웃는 모습이더라도 속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변호사가 성직자는 아니다. 너의 죄를 사할 수도 없고, 극락왕생을 바라줄 수도 없다. 이상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성직자와 달리,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절망을 줄 수도 없다. 왔던 손님이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변호사는 의뢰인과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손님이나 의뢰인에게 가끔 해주는 말이 있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2인 3각 관계입니다.” 2인 3각은 어느 혼자 먼저 나아가면 넘어진다. 발맞춰 뛰어야 목표에 나아갈 수 있다. 목표가 꿈이라면, 변호사와 의뢰인은 같은 꿈을 향해 뛰는 관계일 것이다.

변호사에게 꿈을 실현시킬 마법은 없다. 전관변호사도 변호사이지 마법사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변호사는 의뢰인과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

 

 

/김철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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