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이 하도급 공사대금을 감액하여 정산합의 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정산합의서를 작성했는데, 감액된 공사대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도급계약과 관련하여 자주 발생하는 분쟁사례이다. 하도급법을 위반한 약정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하면서,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하도급법을 위반한 경우 원사업자는 시정명령, 과징금의 행정적 제재를 받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징역 또는 벌금의 형사적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도급법에서는 동법을 위반한 약정의 사법상 효력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하도급법을 위반한 약정의 사법상 효력에 대해서 개별적인 위반유형에 따라 그 효력 유무를 달리 판단하고 있다. 즉, 선급금지급의무 규정(하도급법 제6조)을 위반한 약정의 경우 위 규정을 강행규정으로 보아 선급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약정하였다고 하더라도 선급금을 지급해야한다고 판시하고 있는 반면, 대금감액금지 규정(동법 제11조), 설계변경 등에 따른 하도급대금 증액의무 규정(동법 16조), 부당한 대물변제금지 규정(동법 제17조)을 위반한 약정의 경우 그 사법상 효력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다시 위 분쟁사례로 돌아가보자. 원사업자와 하도급 공사대금을 감액하는 내용으로 정산합의를 한 경우, 수급사업자가 정산합의의 효력을 부인하면서 감액된 하도급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인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하도급법에 위반된 하도급대금감액 약정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하지 않는다. 즉, 감액이 포함된 정산합의약정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감액된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는 없다. 다만, 수급사업자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하지 않은 부당감액약정은 하도급법을 위반한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 바, 부당감액으로 인해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53457 판결 참조). 그러나 이 경우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인바, 입증해야할 요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하도급법을 위반한 약정의 사법상 효력을 직접적으로 부인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은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를 열거하면서 그 경우 해당 부분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유형에 해당한다면 하도급법을 위반한 약정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위 규정의 경우에도 그 유형이 지극히 한정적으로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위 규정에 따라 사법상의 효력이 부인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도급법이 동법 위반행위에 대한 행정적, 형사적 제재를 통해 원사업자의 부당한 행위를 억제하고 수급사업자의 열위적 지위를 보완하고 있기는 하지만, 불법성이 현저한 하도급법 위반 유형에 대하여는 명시적으로 관련 약정의 효력을 부인하는 규정을 두어 수급사업자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김진수 공정거래법 전문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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