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언론사에 점수를 매기고 보도자료를 보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에 주재했던 외신 특파원이 했던 말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부과하는 ‘법정 제재’ 등으로 벌점이 누적된 일부 종편이 방송시장에서 퇴출되느냐, 마느냐로 시끄러웠던 때였습니다. 입사 8년이 되도록 이 제도가 이상하다고 느껴본 적 없는 제게는 신선한 반응이었습니다.그 특파원은 임기를 마치고 본국에 돌아갔지만, 저에게는 저 말을 되새길 만한 여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민주당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블룸버그 통신 기자의 기사에 대해 ‘미국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 원수를 모욕한 매국’이라고 논평했고, 다음 날에는 ‘검은머리 외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후 해당 기자의 SNS에는 공격성 댓글이 빗발쳤고,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을 만큼 곤욕을 치렀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지난 10월, 자신의 집 앞을 서성이는 사진기자의 얼굴을 페이스북에 공개해 ‘좌표 찍기’라는 논란이 일었죠. 또 올해 초 제가 출입한 부처 대변인실에서는 오보(해석에 불과한 애매한 기사들도 많았습니다)를 쓴 기자의 이름을 적시한 보도자료를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일이 한동안 지속됐습니다.

이제는 언론사의 가짜뉴스를 엄벌하겠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인데, 19개 법률에 흩어져 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상법으로 규정해 일반 분야로 확대하는 겁니다. 상법상 기업인 언론사도 대상인데, 오보에 대한 고의나 중과실이 인정되면 집단소송을 할 수 있고, 손해배상액의 5배 내에서 배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기자협회는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악법”으로 규정했지만 여당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고의’를 어떻게 판단할지 모호하고, 보도 행위를 상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지도 논란이지만, 이 법이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요. 유력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인사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한 뒤 언론 탄압 수단으로 악용 우려가 적지 있습니다. 지금도 정부가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면 기자 개인은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심의위원회에 출석해 취재 과정을 진술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또 현행 민법 등에서 오보, 명예훼손에 대해 기자와 언론사를 처벌할 수 있는데, 과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발한 것은 언론이었습니다. 미르재단과 최순실 의혹 보도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가짜뉴스는 엄벌해야겠지만, 언론 자유가 민주사회의 핵심 톱니바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제약하는 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게 일관된 법원의 판단이기도 합니다.

 

/이채현 TV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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