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필자가 속한 의원실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함께 형사입법 방향에 대한 국회 세미나를 주최하였다. 은사님께서 직접 기획하셨다는 행사인 만큼 눈치껏 세미나 현장을 지키던 중, ‘비서관 입법의 지양’이라는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개별 의원실 소속 보좌진이 단편적 이슈 따라가기식 법안을 만드는 것은 전문적 논의가 바탕이 되지 못해 법률안 내용의 정당성 내지는 타당성 확보를 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비서관인 나는 옆자리에 앉은 다른 방 비서관님과 웃음을 교환하며 “아야”라고 읊조렸다.

역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의 수와 통과율을 비교해 보면 시대를 거듭할수록 의원실이 쏟아내는 법안은 폭증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7대 국회는 7489건의 법안을 발의하였지만 20대 국회는 2만 4141건의 법안을 쏟아냈다. 개원한 지 200일도 채 안 된 21대 국회는 12월 14일을 기준으로 벌써 6455건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쏟아내는 법안 뒤에는 그만큼의 고민과 성찰이 녹아 있을까. 개별 의원과 보좌진의 선의를 믿을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는 의원실의 입법 활동을 지원해 주기 위한 여러 장치가 있다. 의원실이 가진 ‘아이디어’를 제반 법령과의 균형성을 고려해 법률안으로 만들어주는 법제실부터 법안의 세부 내용과 균형성, 그리고 관련 부처·단체의 입장까지 담은 검토보고서를 준비하는 전문위원들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소관 상임위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 자구 심사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법안 심사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초기에 간과되었던 입장은 대변되기 어려워지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신중한 검토의 대상이 되기는 갑절씩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법안 발의 단계에서의 전문성과 심사숙고가 그렇게도 중요할 것이다.

법률 및 각 분야의 전문성 있는 국회 보좌진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분주히 돌아가는 의원실의 업무 속에서 특정 이슈에 대한 숙고가 담긴 법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공천 심사뿐 아니라 국회의원에 대한 감시를 외치는 각종 언론 및 단체에서 법안 발의 수를 주요 평가 지표 중 하나로 삼는 한 숫자 늘리기식 법안 발의 관행을 없애기는 어렵다.

21대 국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일하는 국회’이다. 하지만 ‘열일’하는 국회가 놓쳐서는 안되는 점은 일의 양뿐 아니라 질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개의 법안 발의’와 같은 홍보 문구는 이제 복잡했던 20대 국회에 넣어 역사의 뒤안길로 이별을 고해도 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국회 밖에 있는 국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법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으로 무장한 법조인들의 적극적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각자의 이념적·정당적 지향성에 따른 정치평론뿐 아니라 자신의 전문 또는 관심 분야에 대한 입법 동향과 과정에도 많은 관심과 조언을 주시길 부탁드린다. 국회 의원실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은 늘 공개되어 있다.

 

 

/강지은 변호사
국회의원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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