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주말. 알맞게 포근하고 쾌청한 날씨다.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달마산 미황사를 찾았다. 기암괴석이 병풍을 두른듯한 달마산은 빼어난 풍광 때문에 “땅끝의 금강산”에 비유된다.

미황사로 가는길 푯말을 따라 오르다보면 능선을 따라 ‘달마고도’라는 등산로가 조성돼 있고 조금 더 오르면 천년숲 옛길이 나온다. 숲속에 들어서니 아늑하고 호젓하기 이를 데 없다.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기에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곳이다.

피로도 풀겸 수북한 낙엽을 깔판삼아 잠시 누워본다. 등짝에 온기가 스며들고 눈이 스르르 감긴다. 은퇴를 앞두고 여러날 동안 거듭해온 생각을 이곳에서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법조인생 50여 성상(星霜). 1968년 3월 2일 법조계에 첫발을 디딘지 벌써 반백 년이 넘게 흘렀다. 내 나이 팔순, 신체적 기능은 현저히 저하되었으나 정신영역은 아직도 팔팔하다. 사고력은 오히려 한층 더 원숙해진 것 같고 기억력과 언어구사력도 아직은 제구실을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백세의 노익장 김형석 교수는 ‘백년을 살고보니’ 라는 저서에서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한계가 없다.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했다.

실제로 60, 70세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몇 년 전에는 105세에 사이클 세계신기록을 세운 프랑스의 로메르 마르샹 옹도 있다.

나는 노후의 인생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와 결단 여하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매사를 긍정적,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주위의 시선은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우선, 자식들이 간곡하게 은퇴를 권한다. 게다가 후배 구성원들의 전과 다른 눈치도 엿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은퇴를 하는 것만이 바른 선택인가? 은퇴 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데 나의 고집만 세우기에는 지난 봄 큰 수술을 한 후 날로 나빠지는 아내의 건강상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큰딸은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며 아예 서울로 이사를 오라고 졸라댄다. 그래서 여러 날을 두고 고심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좌고우면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래, 순리대로 살자. 모든게 운명이려니 생각하자. 마침내 금년 말에 은퇴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결코 짧지 않은 법조인생 50여 년을 돌이켜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 내세울 것은 별로 없고 숱한 회한(悔恨)과 자괴감이 앞선다. 법조대가족(6명)의 가장이란 것 말고는 오랜 세월 몸 담았던 법조계에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젊어서는 알량한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아집과 독선으로 크고 작은 과오를 범하기도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아등바등 내 잇속만을 챙기며 앞만보며 달려왔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부끄러운 인생여정이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요.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 것을….

이제부터라도 달리 살아보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마음을 확 비운 채 적은 것이라도 나누고 베풀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려한다.

선배 법조인으로서 젊은 후배 법조인들한테 한마디만 남기고 싶다. 깊은 사색과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 좁은 법조인의 굴레를 벗어나 인생의 시야를 좀 더 넓혀서 부디 다채롭고 윤택한 삶을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깊은 상념에 잠기다보니 어느덧 해가 서녘으로 기울고 있다. 서둘러 숲속을 빠져나와 미황사 대웅전을 둘러본 후 곧바로 유명한 도솔암을 찾았다. 수직으로 선 바위위에 층층히 돌을 쌓고 그 위에 암자 하나가 걸쳐있다. 아찔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이 든다. 암자 뒤로는 달마산의 높고 낮은 산줄기가 이어지고 정면으로는 서남해안의 바다가 아른거린다. 마침 그 바다위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다.

 

 

/임태유 변호사
법무법인 새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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